어머니날을 맞으며 어머니 생각을 하던 중에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신 것을 도저히 다 열거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내 어머니는 ‘주부의 전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C..S 루이스(C. S. Lewis)의 말이 생각난다. "주부의 직업은 이 세상에서 최상이다. 다른 직업은 한 가지 밖에 못한다." 루이스는 두 어머니를 모셨다. 자기 어머니와 한 전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전사한 그 전우의 어머니를 평생 모셨다. 그것도 노총각으로서 말이다.
1960년대의 여권신장 운동으로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진보했으나 수입의 차이는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예를 들면 여자들은 대체로 보수가 적은 곳에서 종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전통적으로 여자의 직종인 간호사의 경우도 남자간호사의 보수가 여자간호사의 그것보다 많다는 것은 어찌 된 것인가. 그 이유는 여자들의 출퇴근에는 변화가 많고 예측하기 어려울 때가 많으며, 임신 때문에 오는 직무의 중단, 가정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출근을 못하기 때문이며 거기에 따른 직장의 불편함과 추가지출 등 때문에 여자의 보수가 적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인 주부의 기능이 이 사회의 안전과 경제의 바탕이 되는 인원을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아니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며 그들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계산은 못하고 수입에 방해가 된다고? 주부는 가정이라는 사회적 단위에서 볼 때 주부의 직책과 간호사로서의 직책을 겸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주부로서의 생산력에 대한 보수는 없다.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부인으로서, 딸자식으로서, 누이로서 하여야 할 수 많은 어려우면서도 중대한 그 노력에 보수가 전혀 없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그 문제를 아이의 어머니에게 떠 맡겨 버린다.
주부의 직업, 어머니의 직업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면서도 우리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함은 참으로 계산하기 힘들 만치 귀하며 중대한 것이다. 왜 주부냐고? 주부는 ‘주는(give) 부인’이라는 직업이다. 그들이 주는 이유가 보상을 바라지 않고 전혀 무보상의 사랑이라는 것에서 오는 본능이기 때문에 가식 없는 노력에서 나오는 생산력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중차대한 지 불문가지다.
10여 년 전에 볼티모어 동쪽 애버딘 근처에서 큰 열차 탈선 사고가 있었다. 이 때 한 어머니가 넘어진 차안에 갇혀 있었다. 그녀는 조그마한 틈으로 손을 내밀고 “내 애기 받아주세요, 내 애기요!”라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맨 먼저 하는 소리는 대개 “날 살려주세요"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애기 살려 주세요!“라 했다. 그 애기는 살았고 구조원이 그 어머니를 구하려고 갔을 때 그녀는 벌써 숨졌다. 참으로 돈으로 계산하지 못할 값진 모성애가 아닌가. 어떤 보수로 이것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소위 사회정의가 이것을 계산에 넣으려고 아이들을 어머니로부터 떼어 놓고 어머니를 직장에 보내어 돈을 벌게 한다. 이런 사회정의가 사회 평안을 감안하는지가 궁금하다. 아직도 종교는 이 점을 늘 걱정하고 있으니 좀 안심이 되기도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