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불러본 지도 꽤 오래 전 일이 됐다. 1967년에 작고하셨으니 37년간 아버지를 불러보지 못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늘 아버지의 사랑이 흐르고 그 은혜를 잊을 수 없다.
오는 15일 아버지날을 앞두고 두아들과 남편의 묘지에 참배하러 가려니 내 친정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하다. 인정이 많으시고 자상하셨던 아버지가 읽어주셨던 흥부놀부, 심청전 이야기는 지금도 그때 아버지 무릎에 앉았던 온기를 느끼게 한다.
늘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셨던 아버지는 6,25이후 걸인들이 집 문 앞에 오면 잡수시던 밥을 떼어 나보고 갖다 주라며 사랑 실천을 가르치셨다.
군산 고등학교 훈육주임으로 계실 때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비를 대주셨고 점심을 못 싸온 온 학생들을 위해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도시락을 내게 배달시키셨던 기억들,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고 등교하려는 내게 작은 손지갑에 100원을 넣어 주시면서 꼭 필요할 때 쓰는 지참금이라고 말씀 하셨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이북 평양에서 1915년 6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하셨고 대지주의 아들로 자라면서 운동을 잘해 청소년시절 대동강에서 다이빙을 한 분(석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들었다.
그 후 일본에 가서 체육전문대학을 다니셨으며 30여년을 한국에서 체육교사를 하셨고 기계체조 기구 개발에도 힘쓰셨다.
내가 맹인 학생을 돕는다고 하니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널뛰기 기구를 고안해보시겠다고 하셨던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닮아 운동을 좋아했고 무용도 했으며 아버지를 따라 학생 시합이 열릴 때면 열심히 응원했던 기억도 새롭다.
지난주에는 이 지역 10세 소녀들로 구성된 소프트볼 게임에 갔었다. 큰손녀딸이 피처로 활약하여 8-2로 승리하는 게임을 응원하고 상을 타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울컥했다. 유전은 못 속인다고 큰아들은 할아버지를 닮아 운동을 좋아해 주말이면 3남매를 야구, 농구, 축구 등 각종 운동을 시키고 있다.
아버지는 가정의 머리이고 어머니는 가슴이라 한다. 아버지의 사랑과 롤모델의 삶은 어린자녀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과 지침이 된다. 고(故) 강영우 박사가 아들에게 읽어 주었던 “어둠 속에 읽어준 아버지의 이야기"는 큰아들이 하버드대 입학 서류에 제출하여 합격된 유명한 에세이다. 자녀 양육 시간은 힘들고 바쁘고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나 지나가는 순간순간의 체험과 훈련을 통해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되어 가는 과정에 아버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함을 생각하면서 성경말씀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금이로다"를 묵상한다.
특히 젊은 아버지들은 자녀들과 함께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어 훗날 “나의 아버지를 가장 존경 합니다"라는 칭송을 받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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