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한 평생 세리머니(의식)를 수없이 치른다. 첫돌로 시작해 환갑을 지나 칠순, 팔순을 넘길 때까지 해마다 생일을 쇤다. 입학식, 졸업식도 몇번 있고 세례식이나 시민권 선서식도 갖는다. 인생최고의 세리머니는 물론 결혼식이다(독신자 제외). 자녀를 낳아 생일상을 차려주며 은혼식, 금혼식 등 ‘애니버서리’를 치르다가 장례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결혼식이 달콤한 와인 맛이라면 장례식은 씁쓸한 한약 맛이다. 그런데, 시큼한 레몬 맛을 내는 세리머니가 미국에 늘어나고 있다. ‘이혼식’이다. 남이 알까봐 쉬쉬하며 혼자 가슴앓이를 한 건 옛날얘기다. 이젠 이혼을 비극이나 수치가 아닌 ‘희망의 새 출발’로 보고 파티를 열어 당당하게 공표한다. ‘돌싱’(돌아온 싱글)이 많아지면서 생긴 새 풍속도이다.
지난 2012년 미국에서 240만 쌍이 이혼했다. 이들을 타깃 삼아 이혼파티 기획업자, 꽃집, 제과점, 변호사는 물론 ‘이혼 학’ 전문 대학교수들도 생겼다. 이혼파티는 흔히 갈라선 부부 중 한편(대개 여자쪽)이 연다. ‘이혼 케이크’는 물론 부러진 결혼반지 모양의 ‘이혼반지’(또는 결혼반지를 담은 관), ‘방금 이혼(Just-divorced)’ 배너와 풍선 등이 장식된다.
얼마 전 뉴욕에서 리셉션에, 만찬에 8인조 밴드까지 딸린 호화 이혼식이 열렸다. 결혼식 때와 정반대로 아버지가 혼자 걸어 들어와 이혼녀 딸을 데리고 퇴장했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던진 꽃을 받아 챘던 들러리가 이혼녀에게 다시 꽃을 던져 신부자격이 회복됐음을 선포했다. 이혼 케이크엔 신부가 ‘지긋지긋한 신랑’을 벼랑으로 밀어뜨리는 모형이 장식됐다.
플로리다주의 한 제과점 업주는 8년 전 첫 이혼 케이크를 주문받고 고객의 요청대로 결혼 케이크를 거꾸로 세워 신랑이 바닥에 깔린 형상으로 만들어 줬다. 그 케이크를 주문한 여성은 불과 1년 반 전에 결혼 케이크를 주문했던 신부였다. 그 디자인이 히트를 날리는 바람에 제과점 업주는 그 후 똑같은 이혼 케이크를 매월 한 개 이상 주문 받는다고 했다.
이혼파티 용 팝송도 많다. ‘예스터데이’(비틀즈), ‘우리는 이제 사랑을 만들지 않아요’(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당신은 내게 더 이상 꽃을 안 가져와요’(스트라이샌드 & 닐 다이아몬드), ‘이제 누가 섭섭해 할까요’(코니 프란시스), ‘당신은 사랑의 감정을 잃어 버렸어요’(돌리 파튼) 및 인생살이 팔자소관이라는 ‘케쎄라, 쎄라(도리스 데이) 등 대개 여성가수 노래다.
사회학자들은 앞으로 이혼파티가 일반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동성커플들이 떳떳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숨기고 살았던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가족, 친지들 앞에서 소위 ‘커밍아웃(까놓고 밝히기)’ 의식을 벌이며 암 극복환자들이 자축행사를 즐기고 개나 고양이의 생일파티까지 챙겨주는 세태에서 이혼파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이혼도 불황을 탄다. 경기침체가 바닥을 쳤던 2009년엔 이혼률이 40년래 최저치로 떨어졌다가 그 후 3년간 계속 늘어났다. 불황으로 집이 팔리지 않아 ‘오월동주’했던 240만명의 부부가 2012년 한해에 재산을 정리해 갈라섰다. 가정이 두쪽 나 아파트 수요도 폭증했다. 일자리가 필요하게 된 이혼녀들이 구직 캠페인을 겸해서 여는 이혼파티도 많아졌다.
이번 월드컵 개막식에서 노래 부른 제니퍼 로페즈가 16일 LA 카운티 법원으로부터 세번째 이혼확정 판결을 받고 쾌재를 불렀다. 그녀는 배우 겸 가수인 마크 앤소니와 10년 전 결혼했지만 3년 전부터 별거해왔다. 한국에선 탤런트 최진실이 6년전 자살하기에 앞서 조성민과 이혼한 후 “온 가족이 3년간 죄인처럼 살았었다”고 그녀의 어머니가 16일 토로했다.
한국이 일본에 앞서 아시아의 이혼왕국으로 떠올랐지만 이혼파티가 열렸다는 말은 아직 못 들었다. 요즘 한국 맞벌이 부부들의 관심은 이혼부부의 미래 퇴직금도 분할대상인지 여부를 가름할 대법원 판결에 쏠려있단다. 하지만 미국식이라면 뭐든지(정치만 빼고) 기를 쓰고 흉내 내는 한국에 머지않아 결혼식장 부설 이혼식장이 다투어 문을 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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