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8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아무런 명분도 없이 쿠웨이트로 쳐들어가 이를 점령했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고 쿠웨이트 합병을 기정사실화하면 감히 누가 이에토를 달 것인가 하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아버지 부시가 이끄는 미국을 비롯한 34개국으로 이뤄진 다국적군은 1991년 2월 지상전투 개시 4일 만에 쿠웨이트를 탈환하고 사실상 이라크의 항복을 받아냈다. 미군만 54만 명이 참가한 이 전쟁에서 미군 사망자는 고작 146명이었고 그나마 그 중 35명은 아군끼리 오발로 인해 죽었으니까 이라크 군에 의해 사살된 미군은 111명에 불과했다. 아들 부시가 치른 이라크 전 미군 사망자 수가 4,000명이 넘는 것과 비교하면 첫 번째 걸프전이 얼마나 완벽한 승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냉전 후 첫 승전 대통령이 된 아버지 부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1년여를 남겨둔 1992년 대선은 해보나마나 인 듯 싶었다. 이 때문에 나오기만 하면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을 따내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던 마리오 쿠오모 뉴욕 지사 등은 출마를 포기했고 대신 별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올망졸망한 후보 7명이 도전장을 던졌다. 언론은 이들을 ‘7명의 난쟁이’로 불렀다.
그 중 한 명이 빌 클린턴이다. 그는 당시 정치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아칸소 주지사로 무명이었지만 참신함과 젊음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대중속에만 들어가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펄펄 나는 그의 정치적 재능이었다. 그가 민주당 전당대회용으로 만든 홍보 영상 ‘희망에서 온 남자’(The Man from Hope)는 지금까지도 정치 선전물 중 걸작으로 꼽힌다.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 이름이 ‘희망’이라는데 착안한 이 비디오는 “이 사람을 찍으면 나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다”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10여년 뒤 오바마가 ‘담대한 희망’을 들고 나온 것은 여기서 한 수 배웠다 봐도 좋다.
거기다 클린턴은 91년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경제를 줄기차게 물고 늘어졌다. “문제는 경제다, 바보야” (It’s the economy, stupid)는 근자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정치 슬로건이다.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그는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결과는 92년 대선에서의 완승이었다. 한때 90%가 넘는 지지율을 자랑하던 아버지 부시는 단임 대통령이란 불명예 속에 눈물을 흘리며 백악관을 비워줘야 했다. 그러나 8년 뒤 아들부시는 클린턴 행정부의 2인자이자 그의 후계자인 앨 고어를 꺾음으로써 어느 정도 설욕을 했다.
2016년 대선도 클린턴과 부시의 재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빌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가 사실상 지명을 따놓은 상태고 공화당에서는 수많은 후보가 난립하고 있으나 역시 부시 가문의 젭 부시가 지명될 가능성이 제일 높다. 젭은 공화당 중진과 전통적 지지층, 거액 헌금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아내가 토종 멕시칸이고 불법체류자 합법 체류 문제에서도 우호적이어서 공화당의 결정적 약점인 히스패닉 표를 끌어오는데도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티파티 등 당내 강경파의 반발이 있기는 하나 이들 표를 한데 모을 기수가 없다는 것이 젭의 행운이다. 다른 후보를 압도하는 모금력도 지명을 따내기 위한 캠페인이 길어질수록 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선거도 다른 것이 비슷하다면 결국에 가서는 돈이 많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지금으로 봐서는 힐러리가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힐러리에게는 빌 클린턴 때부터 쌓여온 숱한 스캔들에, 이메일 폐기와 제3세계 독재자들의 클린턴 재단 헌금, 남편보다 훨씬 떨어지는 캠페인 능력, 그리고 민주당 집권 12년이라는 피로감 등 악재도 많다. 전직 대통령의 아내와 아들 겸 동생의 대결은 과연 이뤄질 것인지, 그렇게 된다면 승자는 누가될 것인지, 내년 선거는 꽤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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