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20일 새벽 5시 34분(바그다드 시간) 19만명의 미군을 포함한 30만 명의 다국적군은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그 후 20일 만인 4월 9일 바그다드는 함락되고 사담 후세인의 장기 독재도 끝났다. 이 기간 중 미군 사망자는 139명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이중 수십 명은 아군의 오발로 인한 것이었다.
의기양양한 조시 W 부시 대통령은 5월1일 스스로 비행기를 몰며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는 현수막이 걸린 항공모함에 착륙했다. 여기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 다음해 미군들이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 갇힌 이라크 인들을 벌거벗겨 놓고 고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처음 미군을 환영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증오의 대상으로 변했다. 거기다 이라크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면서도 후세인 지지 세력인 수니파에 눌려 지내던 시아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폭발하며 이라크는 내전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아파로 총리가 된 말리키는 노골적인 시아파 우대 정책을 펼쳤으며 미국은 사담 아래서 권력을 누리던 수니파 군부 세력을 장성급부터 말단까지 내몰았다. 졸지에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은 이라크 군이 갖고 있던 무기를 빼돌린 후 게릴라로 변신했다. 특히 수니파가 다수인 안바르 지역은 이라크 군부 출신 게릴라에 의해 사실상 장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아들 부시는 2007년 소위 ‘Surge’라 불리는 미군 병력 증파를 통해 다시 이라크의 치안을 확보하고 주도권을 잡는데 성공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책을 바꿨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일이지만 애초부터 바른 전략을 세웠더라면 4,000명에 달하는 미군 사망자 등 불필요한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이라크 침공 전 에릭 신세키 육군 참모총장 등은 의회 청문회에서 “이라크 치안을 유지하려면 수십만 명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그의 상관인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이는 실제 필요한 수치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며 이를 무시했다. 신세키는 결국 상부와 마찰을 빚다 사실상 경질됐다.
2008년 대선에서 처음부터 이라크 전에 반대했던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미국의 이라크 철군은 결정됐다. 그러나 침공 때도 반대가 많았던 것처럼 철수에도 반대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겨우 이라크가 안정을 찾았는데 아직 힘이 없는 이라크 군만 남겨두고 미국이 발을 뺀다면 이라크는 다시 내전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란 경고였다.
그러나 부실한 이라크 침공 계획에 대한 경고가 무시된 것처럼 이 또한 묵살됐다. 2011년 말 미국이 이라크를 떠나자 비관론자들의 예언은 들어맞았다. 알 카에다보다 훨씬 잔인한 IS라는 테러 조직이 시리아 내전의 와중에 세력을 넓히더니 졸지에 이라크 영토의 1/3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이들은 최근 수니파의 본거지이자 바그다드가 코앞에 있는 안바르 지역의 수도 라마디를 점령해 버렸다.
이라크 군인들은 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미국이 준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에 급급한 형편이고 미제 무기는 이제 IS의 전력 증강용으로 쓰이고 있다. 미국은 공습과 훈련 요원들을 통해 이라크 군을 돕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IS를 퇴치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게 중론이다.
오바마는 과연 아들 부시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제2의 병력 증강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본인 자체가 이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오랜 전쟁에 지친 미국민 다수가 바라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를 방치했다가 바그다드에 IS의 검은 깃발이 휘날리는 날 막대한 중동 석유 자금을 바탕으로 한 테러는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리고 그 1차 타겟은 미국과 미국인이 될 것이란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바마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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