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월요일 아침 평소와 같이 도시락과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며 해군본부 옆을 지나는 데 갑자기 옥상에서 공중의 비행기 두대를 향해 요란하게 기관총을 쏘아댔다. 교실에 들어가니 담임선생님이 침울한 표정으로 전쟁이 났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25일은 주일날이어서 항상 그렇듯이 온 식구가 중구 저동에 있는 영락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는 아무 근심 없이 형제들이 학교에 간 사이 북괴가 전날 새벽 4시에 삼팔선을 넘어 남침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걸음을 재촉하여 남산 부근 우리집 계단을 들어서려니 바로 윗집에서 인민군 찬양가가 울려 퍼져 섬뜩한 마음에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모님과 숙부님 부부가 우리 형제자매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윗집이 빨갱이 집인 줄 알게된 우리 가족은 서둘러 정든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민의 행렬은 처참했다. 가족을 찾아 헤매는 모습, 가족이 죽어 통곡하는 소리, 갓난아이 우는 소리, 배고파 신음하는 소리,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화물열차가 인산인해를 이뤄 열차 꼭대기까지 올라타면서 드디어 부산역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40계단’ 피난살이가 시작되었다. ‘40계단’ 위의 산동네에 피난민들의 움막집이 만들어지고 ‘40계단’을 중심으로 구멍가게가 생기고, 껌 양담배 초컬릿 등 상자를 어깨에 메고 다니며 팔고 어린애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신문사 앞에서 호외와 신문을 선불로 주고 사서 신문팔이에 나섰다.
‘40계단’ 피난민의 상행위가 길 건너 자갈치 시장으로 확장되고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장사 경험이 있던 이북출신 상인들이 모이면서 ‘국제시장’ 으로 발전하였다. 6.25 전쟁 65주년을 맞으며 그날의 아픔을 되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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