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복지센터의 사무총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업을 하시는 한 이사님께서 나에게 ‘어떤 행사나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 항상 ‘추가 비용(hidden cost)’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그 말씀을 들을 때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예산을 짤 때 꼼꼼하게 하면 되겠지’라는 정도의 교훈을 얻고 넘겼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참 그 말씀이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이었구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비영리 기관에서는 빤히 코스트가 예상이 되면서도 그것을 예산 청구에 넣을 수 없는 경우들이 허다하게 존재한다. 예컨대 우리 기관은 지역사회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다 보니 , 그 분들이 더 많이 찾아올 수 있도록 주중 저녁에 혹은 주말에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 경우들이 참 많다. 그러니 그 프로그램을 맡은 직원들은 퇴근 이후에도 계속 남아서 행사를 준비하고 저녁 식사 시간을 넘겨야 하는 경우들이 많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저녁 식사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항상 고민이 된다. 정부 기관이나 사립 재단들에서 그랜트를 받을 때 이런 비용들은 대부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 비용이 들 것을 예상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이런 비용들이 포함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 다 퇴근하고 집에서 쉴 시간에 혼자 남아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참 미안하고 감사할 일인데, 추가비용까지 부담시킬 수도 없고, 어쩌다 한 번씩은 사비를 들여 직원들 밥을 사주기도 하지만, 일주일 동안 세미나를 진행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국은 빠듯한 운영비에서 그 돈을 지출할 수밖에 없다.
이런 나의 속앓이를 알고 있는 직원들은 어떻게든 그 비용을 아껴보려고 노력한다. 한번은 퇴근했다가 저녁에 있는 세미나를 돕기 위해서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는데, 직원들이 밥을 먹는 테이블 위에서 빨간 딱지가 붙은 음식 포장이 눈에 띠었다. 식사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한국 식품점에서 마감 시간에 빨간 딱지를 붙여 싸게 파는 음식을 사다 먹은 것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순간 한쪽 가슴이 따끔하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큰 히든 코스트는 단지 밥 값 얼마가 아니다. 실은 샐러리로 환산되지 않는 직원들의 눈물과 땀과 오버타임, 이사님들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의 땀과 수고와 섬김에의 열정, 이런 것들이 정말 복지센터를 복지센터 답게 만드는 히든 코스트가 아닐까?
어디 우리 복지센터뿐이랴?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히든 코스트의 천국이다. 주야로 아이들을 학교로 학원으로 실어 나르는 우리 부모님들의 시간, 노고와 피곤함, 새벽부터 일어나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는 엄마들의 피곤하지만 사랑이 담긴 예민한 손놀림, 맞벌이하며 열심히 사는 자녀들을 돕기 위해 낮 시간 동안 손자손녀들을 돌보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헌신…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처럼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히든 코스트의 비용을 주장하지 않고 기꺼이 감당하시는 분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돈으로 환산되는 것보다는 돈으로 환산될 수도, 할 수도 없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 그 세상에서 우리는 진정 가치 있는 삶의 향기를 누리며 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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