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패망하던 날의 조선총독은 아베 노부유키다. 그가 1945년 9월8일 서울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앞에서 항복문서를 서명한 후 가진 종무식에서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패했지만 한국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이들은 결국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가슴 서늘해지는 저주가 섞인 예언이다. 요즘 인터넷에 이 아베 노부유키가 현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할아버지라는 글들이 게재되고 있다. 어떤 독자는 아베 조선총독과 지금의 아베 일본총리는 사고방식이 너무나 비슷하다며 “아베는 죽어서 돌아오는가”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일본총리 아베 신조의 할아버지는 조선총독을 지낸 아베 노부유키가 아니다. 그의 조부는 중의원을 지낸 아베 간으로 일본정계에서는 온건파에 속한다. 아버지는 친한파 외무대신을 지낸 아베 신타로다. 주목할 것은 아베 총리의 고조부가 악명 높은(일본에서는 영웅) 오시마 요시마사로 동학란 때 일본군 8,000명을 거느리고 아산에서 청군을 물리친 후 경복궁에 진입한 일본군 사령관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정한론을 펼친 요시다 쇼인의 제자다.
막부 타도를 외치며 천황중심 정치를 외친 요시다 쇼인은 야마구찌 현에 쇼카손주쿠라는 학원을 열었는데 이 학원 출신들이 후일 메이지 유신의 중심인물들이 되었다.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도 요시다 쇼인의 제자다. A급 전범이었으나 전후 친미 자세로 총리까지 지낸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도 마찬가지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 중에 총리가 9명이나 나왔으며 수많은 장군들이 배출되어 야마구찌 현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고장으로 인정받는다. 한국의 TK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족보를 갖고 있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멘토가 바로 요시다 쇼인과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다. 아베가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야마구찌 현 하기시에 있는 쇼인 신사를 참배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요시다 쇼인은 북으로는 조선과 만주, 남으로는 대만과 필리핀을 정벌해야 일본이 성장한다는 정한론과 대동아 공영론을 편 일본 극우사상의 원조다. “러일 전쟁이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다”는 등 아베총리의 이번 8.15 담화가 왜 침략전쟁의 합리화로 수식되어 있는지를 그의 정신적 족보가 말해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내 임기 5년 동안 일본 총리가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함께 일본 정치의 불안정성은 극우 포퓰리즘이 더욱 확산되는 토양으로 작용했다”고 아베정부의 극우 원인을 설명하고 있지만 또 하나의 원인은 요시다 쇼인의 부활이다.
일본 국민은 사실 정치에 대단히 무관심하다. 이런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국민 의식으로는 중국과 한국의 팽창에 맞설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아베는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콤플렉스다. 일본의 저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죄는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일본은 자신감 상실 같은 것이 있어서 좀처럼 한국과 중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베정부의 콤플렉스를 지적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콤플렉스가 요시다 쇼인 재등장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왜곡이 몸에 밴 친구가 아베다. 그러나 불변의 진리는 아베도 정치에서는 지나가는 정객이라는 사실이다. 아베 이후의 민주적인 정권 등장을 생각해 아베 증오와 일본증오가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 일본은 한국에게 필요불가결한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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