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꾜에서 전철로 2시간 정도 남쪽으로 달리면 도착하는, 작은 도시인 조후 시에 11월 말인데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내가 파견근무 하고 있는 회사 앞 꽃밭을 덮고, 시내에 몰려 있는 기와집들을 벗어나서 넓게 펼쳐져 있는 논들을 건너 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조그만 동산 아래에, 동갑나이의 친구인 히도미가 살고 있는 ‘분꼬’ 마을도 하얗게 덮고 있었다.
히도미가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눈으로 덮인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히도미의 안내로 고다쓰(일본식 난로) 앞에 앉아서 두 다리를 고다쓰 앞의 마루에 뚫려 있는 빈 공간에 내려놓았다. 히도미가 손수 만들었다는 ‘낫도 떡’과 검은 쌀로 만든 감주를 쟁반에 담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 아침에 만든 떡이라 따뜻해요. 맛을 보세요.” 조그만 사기그릇 속에 삶은 낫도 콩에 새알같이 하얀 떡이 섞여 있다. 젓가락으로 떡을 집어서 빈 밥공기에 넣고 설탕에 버무려진 낫도 콩도 숟가락으로 떠서 밥공기 속에 넣고 저어서 낫도 콩과 함께 떡을 한 점 입에 넣었다. 달작 지근 하면서도 쫀득한 낫도 떡 맛이 입 속으로 퍼졌다. 마치 달콤한 단팥죽에 넣은 찹쌀 떡 맛과 비슷했다. 그러나 낫도 떡은 고소하면서도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도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 있었다.
“히도미 양. 이 고소한 낫도 떡을 어떻게 만들지요?” 히도미가 생긋 웃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집 앞에 있는 2백여 평 남짓한 논으로 갔다. 하얗게 쌓인 눈을 두 손으로 밀어내고 삽으로 땅을 10센티 정도를 파서 땅 아래 묻어 놓은 큰 볏 집단을 풀어 놓은 후 그 속에 여러 개의 작은 볏 집 묶음을 열었다. 추위에 얼지 않고 잘 숙성된 낫도 콩의 모습이 드러났다. 히도미는 낫도 콩을 보여준 후 다시 낫도 콩을 볏집 속에 넣고 땅 속에 넣은 후 그 위에 눈을 수북하게 덮었다.
집 안으로 들어와 난로 앞에 다시 앉은 후 낫도 떡 만드는 법을 히도미로 부터 들으며 낫도 떡과 달콤한 낫도 죽을 밥공기에 담아서 맛을 본다.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만큼 맛이 있었다.
히도미가 나에게 베풀어준 호의의 답례로 도꾜 시내에 살고 있는 내 여동생에게 부탁해 찹쌀떡과 단팥죽을 배송 받아 히도미와 함께 나눠 먹었다.
“참 달콤하고 맛이 있어요. 낫도 떡과 맛이 너무 비슷하네요. 마치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의 외모가 비슷한 것처럼. 나의 아버지(교장 선생)가 그러셨는데, 일본인의 80퍼센트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 왔데요. 긴 상과 히도미는 먼 친척이잖아요. 가깝고도 먼 친척...”
그렇다. 히도미의 말대로 가깝고도 먼 수많은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의 교제를 아베 총리는 더 이상 막아서는 안 된다. 침략의 역사는 한 사람의 손으로 하늘을 다 가릴 수는 없다. 역사는 미래로 나아가는 디딤돌이다. 자신의 시각으로 일방적으로 재단하고 역사를 소수집단을 위한 정치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더욱 안 된다. 불행한 미래를 계속 초래할 뿐이다. 아베 총리는 역사를 두려워하는 패륜의 왕 ‘연산군’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
‘人君所畏者, 史而己‘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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