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할 때면 수돗물을 틀었다. 그 찬물이 얼굴에 닿는 순간 나는 몇십년전으로 돌아가 한국의 속리산을 헤매이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 얼마 되지 않아 속리산으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다. 기차에서 내려 또 버스를 갈아 타고 산길을 얼마쯤 가노라니 깊은 숲속에 한줄로 기다랗게 놓여있는 여관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이 여관에 닿으면 한 방에 네명씩 짝을 지어 들어가라고 해서 나는 우리친구 중 가장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 J에게 차에서 내리자마자 뛰어가서 제일 끝에 있는 방을 차지하라고 얘기하니 헐레벌떡 뛰어서 그 끝방을 맡았다. 다음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가니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여관 옆에는 속리산 산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아주 많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냇물의 느낌이 얼마나 얼음장 같이 차고 시원했는지 그 순간 냇물 속으로 나의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렇게하니 머리속이 쩡하며 얼어붙는 듯 했다.
그때의 감촉이 나의 머리 속에 추억과 함께 남아있어 아무리 찜통같이 뜨거운 여름날을 지날 때에도 그때 생각만 하면 나의 몸과 마음을 식혀주는 피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얼마쯤 지난 후, 한사람 두사람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날의 목표는 산꼭대기에 있는 문장대를 오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여관방에 넣어주는 시골 밥상을 받아 식사를 한 후, 산길을 향해 올랐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오르기 시작했지만, 그 무더운 여름날에 산을 오른다는 것이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오르다보니 흙과 돌멩이, 풀, 나무뿐, 별다른 것이 눈에 띄는 것이 없고 너무나 지루하고 특히 더위를 참을 수가 없었다.
“힘이 드니 다들 좀 쉬어가자” 는 선생님의 말씀에 다들 좋아라하며 풀밭에 않았다. 거의 다왔느냐고 물으니 아직 중간지점에 왔다고 하기에, 나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고, 친구들에게 “얘들아!~ 그만큼 걸었으면 됐으니, 우리 내려가서 냇물에 머리를 감고 여관방에 이불을 깔아 놓고 앉아서 맛있는 것 먹으면서 얘기나 하자.” 했더니 친구 중 두 명은 “그래! 참 좋은 생각이다” 하며 나를 따라 산을 내려왔다. 그러나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 J는 부득부득 “산을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 너희들은 그 맛을 몰라!” 하면서 큰소리를 치며 걸어 올라갔다.
우리는 냇물에 머리도 식히고 시원하게, 편안하게 서로 얘기하면서 지내다보니 어느듯 밖이 컴컴해져오는 것이다. 반 친구들이 하나둘씩 내려오는데 어쩐일인지 J 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간다. 우리는 걱정이 되어 모두가 “웬일이지? 아직 내려오지 않으니...하면서 걱정들을 하는데 희미한 불빛 너머로 몇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달려가 보니 친구J 가 양쪽 어깨를 친구들에게 기대어 엉엉 울면서 내려왔다. “무슨 일이야” 물었지만 대답도 않고 울기만 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무 말 없던 친구가 하룻밤 자고 나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 내가 여기저기 쳐다보다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어. 너무나 놀래서 놓친 일행을 찾느라 애썼지만 아무도 없었지. 날은 어두워 오는데 너무나 겁이 나고 혼났어.”한참 만에 친구 J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몇명이 이름을 부르며 산속을 헤매다 다행히 만나게 되어 함께 내려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서 힘이 생겼는지 말을 잇는다. “중간에서 포기하고 내려온 너희들은 무엇하러 이곳에 왔니? 문장대까지 올라가 봐야지 나는 그래도 문장대에 올라가서 구경을 했지” 하는 말에 내 질문이 “그래서 그 큰 바위에 올라서서 무엇을 봤니”하고 물으니 이곳저곳 낮은 지역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려다보았지. 참으로 아름답더라.” 하고 대답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여러가지의 경험을 하게 된다.
친구 J의 말도 옳다. 목적을 정했으면 결과를 봐야하는 것도 옳은 일이나, 사람은 언제나 자기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
산에 올라가야하지만 나한테 맞지 않는다하면 돌아설줄 아는 것도 지혜이다.
박혜자 / 수필가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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