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 씨, 댁 지붕 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아세요?” 부동산 중개인 K 씨의 전화다.
“무슨 소리예요? 세 살던 사람 나가고 빈집인데….” “여러 친구가 허락 없이 들어와 사는데 아마 그리 반가워하실 것 같진 않습니다.” “예?” 무슨 소리지? 언젠가는 돌아와 살 생각이던 집이었지만 이젠 내게 너무 버거운 짐 같아 아파트로 들어가고 집은 팔려고 막 시장에 내놓은 참이다. 여러 해 세 줬던 집이라 한때는 젊고 예뻤지만, 이제는 낡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집을 둘러보고 있는데 벽난로 속에서 누가 날 보고 있는듯싶어 가까이 가 봤지요. 그런데 시커먼 벽난로 속에 눈 두 개가 반짝거리며 날 지켜보고 있질 않겠습니까?” “예? 정말요? 뭐가요?” 너구리? 머릿속에 왱왱 불자동차 소리가 요란하다. “뱀이요. 얼마나 큰지 벽난로에 그득하게 차 있어요. 두 눈이 날 째려….” 아저씬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데 난 반은 기절초풍해 정신 나간 상태. 바로 몇 시간 전, 나 혼자 그 벽난로 앞을 열 번도 더 오갔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매서운 두 눈이…난 입도 발도 떨어지지 않는 마비상태.
“성혜 씨, 성혜 씨, 내 말 들려요?” “그,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혼수상태(?)서 깨어나 겨우 물었다. “뱀이 굴뚝 타고 들어 왔겠구나 싶어 우선 지붕 밑 다락엘 올라가 봤어요. 아니나 다를까, 지붕 밑엔 쥐 뼈인지 다람쥐 뼈인지 한 것들이 수북이 널려 있는 거예요. 뱀이 한두 마린 아닐 겁니다.” 체크 해 준 에이전트가 고맙다.
“그럼 어떻게 하죠?” “제가 손재주는 좀 있지만 뱀 잡을 정도는 아니라 페스트 컨트롤 회사 불렀습니다.” 그럼 됐다, 이젠 살았다, 한숨 돌리고 걷는 팀 멤버들한테 뱀 수다를 늘어놓았다. “성혜 씨, 집안에 있는 뱀은 카운티가 나와 다 잡아 줘요. 돈 안 내도 돼요.” 뱀 경험 많다는 경씨가 가르쳐 준다. “우린 집으로 들어오는 현관 계단 밑에 뱀굴이 있는 걸 모르고 살았지 뭡니까? 현관 근처만 가면 누가 날 응시하는 느낌이 들곤 해서 이상하다 했어요. 알고 보니까 거기에 뱀 굴이 있었던 거예요. 새끼 깠는지 마당 여기저기 뱀이 나다니겠지요. 바비큐 그릴에 올라앉는 놈, 앵두나무 등걸 타고 느긋이 기대 사람 구경하는 놈, 뱅뱅 똬리 틀고 드러누워 낮잠 즐기는 놈.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어 카운티 불렀더니 와 보고 하는 소리가 독사면 잡아주고, 또 집안에 들어온 놈이면 무슨 뱀이건 다 잡아 준대요. 하지만 집 밖에 있는 뱀은 다치지 않는다 합디다. 그렇다고 우리가 뱀보고 집 안으로 들어가랄 수는 없잖아요. 페스트 컨트롤 회사 불렀더니 트럭 뺑 돌아가며 으스스한 독사 그림이 가득한 차를 몰고 왔어요. 근데 내리는 사람은 우락부락한 노장이 아니고 딱 랄프 로렌 광고모델 닮은 꽃미남이 껑충 뛰어내리는 거 아닙니까?” 그 소리에 나이 든 아줌마부대(?)는 모두 “경 씨 못 말려,” 하며 깔깔.
“랄프 로렌 광고모델도 같은 소리 하데요. 독사라면 잡아가겠지만 해가 없는 뱀이니 그냥 두래요. ‘아니 계단 밑에 뱀 굴이 있는데 다리가 떨려 어떻게 집을 들락거리겠느냐? 그건 잡아 줘야 한다,’ 했더니 거기다 뱀이 나올 순 있지만, 다시 들어갈 순 없는 철사 망을 넣어 주더군요. 일단 나온 뱀이 다시 들어갈 순 없대요. 뱀이 다 나온 후 그 밑을 깨끗이 수리하고 시멘트로 밀폐했어요. 그리고 뱀이 오지 못하게 하는 약을 집 주변에 뿌렸죠. 돈깨나 썼어요.”
“그것도 말 되네. 뱀도 살 권리가 있는 거죠. 죄도 독도 없는 뱀을 뱀이라고 다 잡아 죽이면 되나요?” 친환경주의자 란 씨의 말.
아, 난 얼마나 다행인가? 지붕 걱정할 필요 없는 아파트, 흙 한 톨 없이 짱짱한 아스팔트 깔린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커다란 집에서 내 새끼들만 끼고 사는 인간들이여, 당신 지붕 밑에 누가 당신과 같이 살고 있는지, 누가 당신 지켜보고 있는지, 가끔은 잊지 말고 헤아리시라.
김성혜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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