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길에, 차의 창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바람을 마음껏 맞고 있다. 길가 나무 숲속에, 가지 끝의 나무 잎들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숲 사이로 파고드는 한 줌의 햇빛이 간지럼을 타고 있다. 뜨거운 열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 아침저녁으로 여름빛깔이 벗겨지면서 벌써 9월에 들어서 있다. 켜켜이 쌓여있는 묵은 자아도 이렇게 벗겨지며 마음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 애들이 같은 해에 결혼을 해서 둥지를 떠난 지 2년이 넘었는데 마음은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왠지 미련이 남아서, 쓰던 책이며 침대 등을 고스란히 놓아놓고, 지금도 감도는 그들의 체온을 느끼고 있다. 아이들의 인생은 채워지고 내 인생은 텅 비워진 듯, 허전함이 남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건 어쩌면 마음이 넓게 비워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허욕과 미련을 다 버리고, 빈손으로 태어날 때의 청순함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랄까.
매일 텃밭에 나가서 자라나는 고추와 상추, 토마토, 가지, 도라지, 깻잎 등을 보면서 살아있는 자연을 느낀다. 내가 호흡하고, 식물이 숨 쉬는 소리가 서로 교체되며, 메아리처럼 내 귀를 울린다. 조금씩 줄기가 커가고, 파랗던 토마토가 빨갛게 익는다. 어디 그 뿐이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삶을 선명하고 생생하게 자기만의 빛깔로 그려놓듯, 상추는 머리위에 노란 꽃을 피우며 씨를 맺고 있고, 도라지는 종처럼 생긴 연보라색 꽃을 피우며 옆으로 뻗어 있고, 세 종류의 고추들은 하얀 꽃을 피웠다 지웠다 하며 각양각색의 고추가 열린다.
방울 토마토는 조그만 노란 꽃이 지기도 전에 초롱초롱 토마토가 맺히고, 가지는 퍼플색으로 그림처럼 예쁘게 꽃을 피우곤 자기만큼 예쁜 진보라 열매를 매단다. 나의 기쁨은 마음에서 익어가고, 넓은 들에서 황금빛으로 물들여질 곡식과, 속살을 채우고 있을 온갖 과실은 상상의 날개를 타고 머리에서 익어가고 있다. 세상 모든 생명을 먹이시는 조물주의 위대함은 정말 경이롭다. 좋아하는 녹차 한 모금이 입속을 감돈다. 행복이 함께 온 몸을 감돌고 있다. 하늘에 떠있는 하얀 구름도 내게 웃음을 보낸다. 이 행복을 글로 표현할 재주는 없어도, 얼마나 더 이 행복을 누릴 수 있나 헤아릴 수는 있다.
사람이 65세에서 75세 사이에 가장 행복을 누린다는 통계를 보았다. 그 나이에선, 시련과 고통과 병마를 다 내려놓고, 몸과 마음이 너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로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탓이리라. 한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순간순간을 즐기고, 참다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크로마하프를 켜면서 자주 부르는 찬송가가 있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어두어 오라 하시면 영광중에 나아가리…”
손녀의 나이가 8개월이 넘었다. 자기 엄마만 보면 좋아서 눈빛이 달라지고, 손에 보이는 모든 걸 만지고 입에 넣어도 보고 흔들기도 하면서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는 게 신기하다. 물 흐르듯 지나가는 세월에서, 이제 우리 세대는 지나가고 새 세대가 오는 걸 실감하고 조물주의 섭리를 터득하게 된다. 주어진 운명을 지혜로 극복하면서, 애정을 가지고 자연을 보면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평안한 마음이 생긴다.
언제 들어도 청량감을 주는 매미소리와 풀벌레들의 합창소리, 청명한 하늘을 찌를듯 목청높이 노래하는 새소리가 오케스트라가 되고 있다. 생명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몫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자연의 생명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세월이 감을 두려워하지 말고, 밝고 기쁜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생활이 되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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