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줍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주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내 아이였다.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친구를 보면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언제나 말 수가 적고 여러 사람 앞에서는 얼굴이 빨개지고 내 생각을 제대로 말로 표현 한 적도 없다. 학교 에서 선생님의 질문에 답만 할 정도였다. 더구나 주변에서 ‘고집불통’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이런 성격을 고쳐 나갈 수가 있을까 많이 고심을 했었다. 대학생이던 어느 날 신문에서 ‘아르바이트 학생모집’ 광고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서울 안국동에 위치한 H 출판사로 찾아갔다. 다양한 도서목록이 들어 있는 카탈로그를 들고 가서 책을 판매하는 업무였다. 아마도 이 일이 나의 소심한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꿔 놓을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곳을 찾았다. 여러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성격을 다소 바꿔 놓을 수가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 시기가 방학 때라 기회는 좋았다. 나를 포함하여 아르바이트생은 7명 정도 였다. 그러나 나는 난생처음 시도하게 되는 책 외판원이 된 것이 막연히 걱정이 되었다.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가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직접 고객을 만나서 책을 팔려고 하니 뭔가 창피하고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성과 없이 끝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때 나와 같이 일하게 된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나에게 말을 먼저 걸고 “우리 함께 뛰어 보자”고 제의를 했다. 그는 자기가 고객에게 접근하여 판매하는 방법을 눈여겨보고 그대로 시행하여 보라고 시범을 보여 주었다. 그 친구는 대담하고 자신감이 넘쳐 흘렸다. 치밀한 접근 방법과 상대방 말을 다 듣고 책을 구입하게끔 하는 끈질긴 근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가 보여준 대로 나도 용기를 내어 그 친구의 비법으로 고객을 설득했지만 여러 번 실패를 거듭 했다. 그렇지만 마침내 다행스럽게도 어떤 고객에게 ‘한국문학전집 한 세트’를 팔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판매실적이 늘어났다. 그 대가로 받은 기본수당과 판매실적에 따른 성과금을 모두 받았을 때 내 마음은 천하를 내 손안에 휘어잡은 것처럼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내 성격도 어느새 활력 있고 외향적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나는 ‘돈 벌이가 이렇게 힘들고 무척 어렵다는 것’ 을 그 때야 비로써 깨닫게 되었다. 또한 부친께서 가족을 위하여 벌어드리는 생활비에 대한 노고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방학 중의 짧은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친구가 되었다. 더욱이 동갑내기로 친분이 두터웠다. 그는 졸업을 하자마자 고시에 합격하여 그가 꿈꾸던 법조인이 되었다. 나에게 적극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삶에 만족감을 느끼도록 도움을 준 그 친구가 아직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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