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 씨, 이번 여름엔 계속 동물 이야길 쓰시더군요. 그런 이야기 읽으면 우리 집 개가 더 자꾸 눈에 밟혀요." 요가 클래스서 만난 앤의 말이다. “앤 씨 개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 “우리 개가 지난 토요일 죽었거든요. 까만 물 개에요." 앤의 눈과 목소리가 울렁댄다.
잠시 물개와 물 개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 싶다. 바다에 무리를 지어 사는 물개와는 달리, 개 종류 중 하나인 물 개는 영어로 ‘water dog’이라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키우기 시작해 나도 처음으로 물 개라는 개가 있는 것을 알았다.
“물 개는 워낙에 물을 좋아하는 개예요. 예전엔 어민들과 같이 다니며 물고기를 몰아 그물로 끌어오기도 하고, 선원들과 함께 배 타고 다니며 암초, 위험물 등에 대한 신호를 보내기도 하는 특수한 개였다고 해요. 지금은 완전 애완견이지만 워낙 영리하고 주인을 잘 지켜 사람, 특히 물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족 같은 개였대요." 앤의 설명이다.
“물 개한테는 물론 수영이 기본이지요. 하지만 우리 개는 어찌 된 셈인지 물을 좋아는 하는데 수영은 할 줄 몰라 네 발이 땅에 닿는 데까지만 들어가요. 발 하나라도 땅에 닿지 않으면 겁나서 들어가질 못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웃긴다, 저런 물 개도 있냐’ 하며 놀렸어요. 그래도 우리 식구한테는 충성이어서 늘 내 곁을 지켰지요. 잘 때도 내 침대와 방문 사이에 누워 날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줄 알았고요."
“이 개가 열흘 전 집을 나갔어요. 평생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무척 놀랐지요. 우리 식구 지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알고 지난 14년을 살았거든요. 그날 저녁 같은 동네 사는 친구가 전화했어요. ‘얘, 분명 너네 개야. 우리 집 뒤 개울에 들어가 떨고 있어.’ 하는 거예요. 금방 달려갔지요. 맞아요. 우리 개였어요. 수영도 못하는 녀석이 개울 가장자리에 들어가 누워있더군요. 데리고 와 몸을 말리고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수의사한테 갔어요. 다 체크해 본 수의사는 어디 딱히 아픈 데가 있지는 않지만 열이 높다며 해열제만 주더군요. 집에 와서도 비실비실 누워서 커다란 눈을 껌벅대며 계속 나만 지켜 보는 거예요. 다음날은 마당에 데리고 나가 옆에 눕혀 두고 잡초를 뽑았어요. 항상 절 지키는 놈이라 제가 있는 한 도망갈 생각은 못할 줄 알았지요. 한참 일 하다 보니까 다시 없어진 거예요. ‘아니, 그 몸 끌고 또…’ 하면서 어제 그 개천으로 갔어요. 웬걸, 물에 몸 담그고 누워 반쯤 죽어 있지 않겠어요 다시 데리고 왔지요. 그 다음 날은 아들한테 개를 맡기고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아들이 전화했어요. 개가 다시 도망가 물에 누워 있어서 데리고 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제 발로 서지도 못하는 것이 살 것 같지 않다는군요. 수의사한테 데리고 가라하고 저도 그리로 갔어요.
수의사 말로는 개가 죽을 때가 된 것을 알고 죽을 자리 찾아간 거래요. 열이 107도나 된다데요. ‘엄마, 개한테 더 고통 주지 말고 가게 하세요.’ 눈이 벌개진 아들이 부탁하더군요. 수의사도 그렇게 충고하고요. 그래서 지난 토요일…." 앤이 말을 끊었다. “물 개를 왜 물 개라 하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수영도 못하는 놈이지만 그래도 죽을 때는 물로 가야 한다는 본능이 있던가 봐요. 갈 때와 장소를 느낀 것 아닐까요"
작년과 올해, 나는 가까운 친구를 하나씩 잃었다. 둘 다 깊은 믿음 가지고, 가족과 이웃을 끔찍이 사랑했고, 또 그들의 사랑 속에서 떠났다. 친구 생각이 날 때마다 나도 그 둘처럼 살다 가면 좋겠다 바라본다. 아니, 나 같은 얌체족이 감히 내 친구들 같은 믿음과 사랑 속에 살다 가기를 바라다니…. 족제비도 낯짝이 있지. 앤의 개처럼 헤엄도 못 치는 내 주제…. 그래도 살겠다고 삶의 바다에서 허우적허우적 발버둥질 쳐 대는 내 주제…. 가슴속에서 철렁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그래도 앤의 개는 아무리 개라도 자신이 갈 때와 어떻게 가야 할지는 알던데…. 또다시 가슴 떨리게 철렁하는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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