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느낌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얼핏 보기엔 나뭇잎사귀들이 드러내고 싶은 색깔들을 내 뿜기 시작할 때에 가을 향기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나뭇잎사귀들보다 먼저 감응하며 자신의 마음의 색깔을 드러내는 존재가 먼저 가을을 부른다. 바로 각 사람의 마음 속에 그려지는 가을의 이미지다. 여름의 포스틀류드였던가 아니면 가을의 프렐류드였던가, 모든 것이 아직 희미할 때에,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느낌의 카르마 (Karma)- 즉 부여된 느낌의 업” 이라는 묘한 공간 앞에 내가 서 있게 된다. 이럴 때에 우리에게 감응의 “틀”을 선사하는 음악이 있다. 바하의 “시칠리아노”.
본시 플룻과 합시코드를 위한 작품으로 작곡되었지만 나중에 피아니스트 켐프(Kempff)에 의하여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된 이후 세상에 더 알려지게 되었다. 키신(Kissin)이 연주하는 피아노 독주 동영상은 단연 으뜸으로 손색이 없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연주자들의 연주 동영상을 골고루 음미해보면 더욱 곡이 선사하는 선물의 깊이를 감지해 나갈 수 있다.
시칠리아노는 바로크 시대(1600-1700)에 유행하던 다(多)악장으로 구성된 음악의 한 악장으로 느린 6/8 박자 또는 12/8 박자를 지니며, 대부분의 경우 장조(Major Key)가 아닌 단조(Minor Key)에 작곡의 기반을 두고 있다. 바하의 이 시칠리아노도 역시 6/8박자로 3박자 계열로 구성된 서정적 가락으로 단조 화성에 기반을 둔 채 장조와 단조의 영역을 넘나들며 형언할 수 없는 센티멘탈과 멜랑콜리가 손짓하는 느낌의 카르마로 빨려들어가게 한다. 곡명의 이름은 이탈리아 반도 남단의 지중해에 위치한 섬 “Sicily”의 서정적이고 소박한 목가풍경을 은유함과 관계가 있다. 바로크 음악이면서도 바로크 음악의 상징인 규칙적 리듬의 운동이라든가 제한적 선율의 움직임에 묶이지 않고 마치 “바하- 19세기에 살다” 라는 가설적 명제가 오히려 더 어울리듯 자유하고 낭만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곡이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종종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 한복판에서 노자(老子)가 말한 태초의 시작의 문이 비밀스레 열리는 흔적을 보는 듯 하다- 시간의 카르마. 시간의 카르마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로의 명상조차도 구분시켜 놓지 않는다. 그렇듯 이 시칠리아노는 듣는이의 마음을 시간의 카르마 위에 올려놓고 영원한 느낌에로의 여행으로 초대한다.
그래서일까. 이 음악은 결혼식 음악에도 연주되는가 하면 또 장례식 음악에도 연주되기도 한다. 기쁨과 아픔이 나오는 문은 역시 하나이니까. 이러한 정점에서 이 음악은 우리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여행을 떠난다. 웃음도 눈물도 차이점이 없어지는 신비의 느낌의 공간으로.. 시작도 끝도 없는 음악에로의 카르마로… 느린 8분의 6박자와 단조로 펼쳐지는 리듬과 화음, 그리고 대위법의 조화. 거친 숨소리 조차 이 음악 앞에서는 숨을 고른 채 상상의 백조의 나래 위에서 신비의 음악의 카르마의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바하가 보고, 느꼈던, 영묘한 느낌의 세계를 우리도 이 창구를 통해 만나보자. 설레임과 함께…
가을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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