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넉넉한 풍성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가을에는 명절과 축제도 많다. 대학가를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다양한 주제의 축제들이 열린다. 명절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가을의 풍경이요 가을을 맞이하는 정겹고 흥겨운 축제의 자리이다.
우리 민족에게 가을의 명절 추석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송편도 없을 테고, 성묘도, 고향 방문도, 가족 모임도, 정겨운 추석의 추억도, 달에 얽힌 사연도, 추석에 대한 노래나 시나 문학도, 어쩌면 아예 가을이 없을지 싶다.
해외에서 바삐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잊고 지나가는 것 가운데 하나가 명절이다. 정신 없이 살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기도 하고, 설사 알아도 가까이 지낼 집안이나 친척이 없으니 어정쩡히 보내고, 그나마 지키고 싶어도 미국 달력에는 휴일이 아니니 평일에 명절 기분 내기도 생뚱맞은 듯하여, 그냥 저냥 지내다 보니 점점 고국의 명절과 멀어지게 된다.
이런 모습은 배경은 다르지만 고국 역시 그렇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요즘 기사를 보면 추석같은 명절이 오면 추석 명절에서 오는 순기능 보다는, 오히려‘명절 증후군’이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나타나고, 명절을 전후로 음식차림 문제나, 부모 모시는 문제, 시댁 먼저냐 친정 먼저냐 등의 문제로 가족 간의 다툼이나 불화가 더 커진다는 역기능(逆機能) 현상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아예 명절을 전후하여 해외로 여행을 간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기사도 있다. 명절과 축제의 자리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명절이나 축제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언제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아도 명절과 축제들의 등장과 소멸이 적지 않았다. 고려시대에는 원단(元旦,설날), 상원(上元,정월 대보름), 상사(上巳,삼짇날), 한식, 단오, 추석, 팔관, 동지, 중구(重九, 음력 9월 9일) 같은 9개의 큰 속절(俗節, 명절)이 지켜졌다고 한다. 조선시대로 와서는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4대 명절 혹은 동지를 더하여 5대 명절이 지켜지다가 조선 중종 때 설, 단오(端午), 추석이 조선의 3대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단오마저 사라졌다. 이제 우리 민족에게 남은 명절은 설날과 추석 둘 뿐이다. 설날은(양력 포함하여)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지키는 새해맞이 축제이니 없어지기 쉽지 않을 듯하지만, 가을의 축제인 추석은 사정이 다르다.
요즘 점점 시대변화를 이유로 혹은 교통체증이나 추석 명절의 역기능을 들어, 혹은 경제적 편익이나 실용(實用)적 이유나 세계화를 이유로 들어 겨레의 명절이나 축제를 마뜩잖게 보는 주장들이 더러 보인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명절과 축제는 오히려 그 실용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실용과 효율과 물질주의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 일수록 명절이나 축제를 통하여 원초적이며 창조적인 삶의 에너지를 만나야 한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호이징가는 일하는 인간(Homo Faber)보다는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ce)으로서의 인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명절이나 축제가 빠진 실용은 인간을 기계로 만들고, 사회를 무미건조하게 하고, 사람을 개별화 시킨다.
명절은 우리 민족의 삶을 있게 한 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담고 있다. 민족의 명절과 축제는 농경생활에서 체험한 하늘과 자연에 대한 기원과 감사, 가족의 가치와 가족애의 확인, 조상에 대한 존경심, 지역 공동체에 대한 결속감, 음식 노래 춤 같은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의 놀이적-예술적-창조적 요소를 담고 있다. 요즘 각 나라나 민족의 명절이나 축제가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주목 받고, 인류의 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중국에도 추석이 있지만, 우리 민족이 세상에 자랑스레 내 놓고, 함께 나룰 살아있는 명절문화나 축제로 추석을 들고 싶다. 추석에 담긴 의미는 세계의 어떤 명절보다 깊고 풍부하다. 인류의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그런 명절과 축제를 간직한 민족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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