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먹는 음식, 사는 집, 입는 옷, 그리고 언어가 서로 다르다. 인도는 손으로 음식을 먹고, 서양 사람들은 포크로, 한국 사람들은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 서양 사람들에게는 잘 가라는 인사가 되고 만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은 얼마든지 우리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여러 사람들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이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은 다 하나이다. 통신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온 세상이 여러 곳이 있는 줄 알았지만 오늘 지금 일어난 일들이 바로 저 지구의 반대편에서도 알려지는 시대가 되었다.
경북의 한 마을에 두 할머니가 살고 있다고 한다. 한 분은 90세, 한 분은 71세이다. 나이차이가 20년 정도 되니 누구나가 볼 때에 그 둘은 어머니와 딸, 아니면 언니와 동생정도로 보기 쉽다. 그런데 이 둘은 본처와 첩의 관계라고 한다. 본처가 낳은 자식들이 재난과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후 뒤를 이을 자식들이 없어서 본처가 씨받이를 들였다고 한다. 이 씨받이로 들어온 당시의 25살의 젊은 처자는 그 집에서 함께 46년 동안을 본처와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두 둘의 관계가 편한 관계이었겠는가? 본처는 사랑의 외로움과 아이가 없는 서러움, 또 한 사람은 인생의 기구함과 아들을 낳아야 하는 절박함,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가난함 가운데 서로 피할 수 없는 환경에서 서로 부딪히게 된 것이다. 속에 품었던 미움이나 탄식, 그리고 미안함과 억울한 감정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속의 깊은 아픔도 기나긴 세월 속에 묻히고, 삭혀서 이제는 흐르는 세월의 강물 위에 떠가는 가을 낙엽처럼 그냥 흐르는 대로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름도 다르고, 성도 다른 사람들이 다른 꿈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이 세상의 삶은 거의 공평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삶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누워서 식은 죽 먹기’, ‘누워서 떡 먹기’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말처럼 그게 쉬워 보이지만 식은 죽 먹기가 그렇게 맛있는 것이 아니고, 누워서 떡을 먹는 것이 안락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어떻게 누워서 떡을 먹겠는가? 그 어느 누가 인생의 짐을 짊어지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가 볼 때에는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도 또한 나와 같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성경에 이렇게 말씀한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전도서9:2)
두 할머니들의 서로 다른 삶은 같은 세상 속에서 어려운 시간을 극복하며 헤쳐 나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서로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 안에서, 서로 소망가운데 손잡고 가는 길이 같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지혜인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찾아야 할 행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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