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딸이 세 살 때였습니다. 딸애는 장애아입니다. 아내와 저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 애는 평생 정상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그 딸을 돌보다 속이 상해 당시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을 데리고 배스킨 라빈스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자 하고 나갔습니다. 아이들한테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 있는데 한 테이블에 남녀가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걸 봤습니다. 다시 보니까 부부가 아니고 아버지와 십대로 보이는 딸애였습니다. 숟가락질 못하는 딸을 위해 아버지는 딸의 입에 떠 넣어주고 있었습니다. 딸은 너무 좋아 싱글벙글 받아먹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연신 닦아가며 먹이고 있었습니다.”
여행 중 들린 교회에서 들은 목사님의 설교다. 고백컨대 나는 나이롱 교인이다. 그래도 한평생 지은 죄가 많아 늘 찜찜한 속물임은 나도 안다. 그렇다고 교회 거를 배짱(?)도 없다. 따라서 교회 들를 수 있으면 들르는 게 나라는 인간이다. 목사님은 계속했다.
“아이스크림 사 들고 나가려다 발길을 돌려 부녀에게 다가갔습니다. 인사했습니다. 제 이름은 론입니다. 당신과 딸을 보면서 앞으로 십 년 후의 저를 보았습니다. 제게도 당신 딸 같은 장애 가진 딸이 있습니다. 지금 세 살입니다. 당신 딸의 얼굴에 가득 찬 행복한 미소를 보고 말 못하는 당신의 딸 대신 제가 인사드려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여기 섰습니다. 당신의 딸이 하고 싶은 말은, ‘아버지, 고맙습니다. 제가 장애아라고 쉬쉬하며 숨겨두지 않고 절 위해 아이스크림 집에 데리고 와 맛있는 걸 사 주시고 먹여 주셔서 전 아주 고맙고 행복합니다. 절 사랑해 주시고 보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는 말일 것입니다.” 십 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시는 목사님은 오늘도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 눈을 닦으셨다.
“딸한테 아이스크림 먹이고 있던 아버지와 저는 붙들고 울었습니다. 그 아이스크림 집이 울음 바다가 되었지요.” 그 이야기 듣는 나 역시 그랬다. 비록 나이롱 교인이지만 여기 오기 잘했네, 하면서.
“그날 저녁 아이들 재우고 나서 책상에 앉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묻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만약 네가 6년 전에 아이스크림 집에서 오늘 만난 그 부녀를 보았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 하고 말입니다.
뻔합니다. 그런 사람들 보면 뭐라 해야 좋을지 몰라 슬슬 피해 빠져나갈 궁리만 했을 겁니다. 하지만 3년간 우리 딸 데리고 깊은 고민과 고통을 안고 씨름했기 때문에 저는 그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그 아버지한테 말 못하는 딸 대신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목사님은 다시 눈을 닦으셨다.
“지금은 우리 딸 애가 아이스크림 집에서 본 그 애의 나이를 넘었습니다. 그 고통과 고민이 없었다면 제가 과연 고통과 고민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같이 가슴 아파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제게 필요한 믿음과 사랑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제게 고통과 고민을 주신 것 역시 제게 필요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의 한 모습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어쩌면 많은 목회자나 설교가는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우리 위해 보내 주셨지 않느냐?” 라고 누구나 하는 소리로 못 박았을지도 모른다. 목사님은 그 말은 피하셨다. 맞다. 어쩌면 으레 하는 판박이 표현처럼 들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래서 더 내 마음에 와 닿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좀 더 성숙한 나, 좀 더 타인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려면, 당장 내 입에서 쓰더라도 고통과 고민을 줄여 달라고 애걸복걸 기도하지 말고, 먼저 받아들이고 삼켜야 하는 약인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 겪어야 하는 고통, 고민이 나에게 무엇을 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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