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초기 어느 겨울 늦은밤, 강정 재료의 가격 조사를 위해 세이프웨이에 들렸을 때다. 중년의 흑인 남성이 넛 제품을 꼼꼼히 살피며 이것저것 바구니 가득 담고 있었다. 그에게 내 강정맛의 평가를 부탁하기로 마음먹었다. 막막한 이국생활에 뭔가 알아내야 한다는 간절함이 나를 움직였던 것 같다.
봉변을 당하는 건 아닌지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의외로 친절하게 응해 주었다. 차에서 포장해 둔박스를 가져와 매장 입구에 선 채 시식을 권했다. 그 광경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7종류의 강정을권했다. 그는 호두, 아몬드, 깨, 호박씨, 해바라기씨, 잣 등 여러 가지강정 맛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들려줬다.
직업을 물으니 CPA란다. 명함을받아 집에 와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잠깐 멍해졌다. SF에 본사를 둔큰 플랜트회사의 CFO이고, PhD소유자였다. 길가에서 참 어이없는짓을 했구나 싶었다. 어리숙한 이방인의 무리한 부탁을 받아준 그가 참 고맙다. 내 남편도 내게 그렇게까지 자상했을까?
낯선 사람, 낯선 언어, 낯선 문화모든 게 부담이다. 그럴 때면 영어가 서툰 나를 편히 대해준 그 중년의 흑인남성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낯선 이국에서 그의 작은 친절은 나에게 지금도 큰 용기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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