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이 어떤 정치인인가를 표현하는 말 중 가장 어울리는 말은 ‘YS는 못 말려’라고 생각한다. 정직하고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용감히 행동에 옮기며 배짱 있게 결단을 내린다.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실수도 많아 에피소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반면 그의 따뜻한 인간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나는 YS와 두 번의 단독 인터뷰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단식투쟁 후인 1984년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인 1999년이다. 두 인터뷰 모두 그의 상도동 자택에서 가졌다.
그는 정이 많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스타일이다. 대화에서 상대방이 장벽을 느끼지 않는다. 서민형이다. 솔직하고 체 하는 게 없다. “DJ(김대중)를 왜 그렇게 싫어하느냐”고 물었더니 “나의 당선을 축하하며 영광을 빈다고 전화까지 해놓고는 나의 대통령 취임식 날 민주당소속 의원들에게 전원 참석하지 말라고 지시해 놓았어. 문민시대 개막 첫날을 야당이 축하하기는커녕 찬물을 끼얹는데 앞장서다니 민주투사란 사람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입만 열면 거짓말 입니다”라며 자신의 가슴에 맺힌 한을 털어 놓았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인터뷰를 마치고 난 다음이다. YS의 집이 있는 상도동은 서민동네라 골목이 너무 좁아 방문객은 큰길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YS가 따라 나오며 큰길까지 바라다 주겠다고 한다. 엊그제까지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기자를 배웅해 주겠다니 황송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극구사양 했는데도 “미국에서 나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는데 괜찮다”며 큰길까지 따라 나섰다. 게다가 YS를 본 신문사 운전기사가 놀라서 차문을 열고 나오자 그에게 다가가 “우리 집 골목이 좁아서 불편해”하면서 그에게 악수를 청하는 게 아닌가. 신문사 운전기사는 돌아오면서 “대통령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며 감격해 어쩔 줄을 몰랐다. YS는 이렇게 사람을 감동 시킬 줄 아는 정치인이다.
YS와 DJ는 한국 정치사에서 대표적인 민주투사로 꼽힌다. YS의 투쟁 스타일은 화끈하고 9회 말 홈런과 같은 극적인 요소를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죽기 살기로 행동에 옮긴 신군부에 대한 단식투쟁 이다. 1984년 상도동 인터뷰 때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YS는 12.12 후 강제로 정계은퇴 당한 후 분을 삭이며 3년 동안이나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마침내 직선제 개헌, 언론 자유 등 민주화 5개 사항을 내걸고 단식투쟁에 들어갔다(1983년 5월). 그의 단식이 심각해지자 당황한 전두환이 민주공화당 사무총장 권익현을 시켜 YS의 가택연금 해제와 해외여행 자유를 제의해 왔다. YS는 권익현에게 “해외여행? 좋은 이야기요.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시오”라고 말하면서 신군부의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했다.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전두환도 그의 단식중단 회유를 포기 했다고 한다. 그의 단식이 23일이나 계속되어 사경을 헤매자 김수환 추기경, 함석헌 옹, 문익환 목사 등이 간곡히 말려 단식이 중단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민주화 운동이 다시 일어나 직선제 개헌을 성공시키기에 이른다. 단식투쟁과 하나회 척결은 가장 YS다운 정치적 결단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대통령 재임기간 중 가슴을 치며 괴로웠던 때가 아들인 김현철을 구속지시 했을 때였다고 한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웠으며 별별 후회를 다했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가 상식에 어긋나는 실수를 해가며 아들 현철을 국회의원 시키려고 애쓴 것도 이같은 마음의 부담을 덜기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 꿈만은 닭의 목을 틀어도 새벽이 오지 않았다. 아들문제는 정치인 김영삼의 옥에 티다. YS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정치인이었다.
<이 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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