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을 읽을 때마다 우린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젊은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시곗줄이 없는 남편의 시곗줄을 샀고, 남편은 시계를 팔아 부인의 머리핀을 샀다는 이야기.
오늘 사는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 이해 할까? 우리처럼 가슴이 뭉클할까? 스마트폰 있는데 시곗줄이 왜 필요하지… 하진 않을까? 전쟁 후 먹을 것 입을 것 없이 살아야 했던 우리는 머리카락 팔아 시곗줄 사는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았는데. 아니, 이해 뿐이 아니지. 우리도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이야기를 얼마든지 보고 들으며 자랐는데.
“제게도 그 비슷한 이야기 꽤 있지요.” 가난한 시절의 크리스마스 이야길 하고 있었는데 전 선생이 웃으며 털어놓았다.
“저는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셨어요. 제 동생이 세 살이고 전 다섯 살이였거든요. 5년 후에는 아버님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전쟁 치르고 난 후, 누구나 어렵게 살던 시절이다. “그래도 전 복이 많아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오늘까지 살아온 셈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오래 누리지 못했어도 주변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참으로 많은 사랑 받으며 살았으니까요. 제가 지금껏 받은 사랑을 다 늘어놓자면 날 샐걸요?” 칠순이 넘고 연세가 드시니까 사랑의 빚을 진 분들 생각이 더 나시나 보다.
“제가 논산 훈련소에 있을 때에요. 절 찾아 면회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어린 동생은 있지만, 부모님이 계시질 않았으니까요. 시집가 사는 누이 두 분이 계시긴 했어도 절 면회 올 형편들은 아녔지요. 그래도 제가 부모 일찍 여의고 고생한다고 절 끔찍이 사랑해 주는 사촌 형님이 계셨어요. 그 사촌 형이 절 면회하러 과자 한 봉지 사들고 온 겁니다. 얼마나 좋던지요. 어깨가 천정까지 올라간 듯 하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저한테도 찾아온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요! 나도 면회 온 사람이 있다고 고함 지르고 싶었지요. 과자를 다른 훈련병들한테 돌리면서 얼마나 자랑했던지… 그 기분 아시겠어요? 모르시죠? 저 같은 입장에 서 보지 못한 분들은 이해 못할 겁니다.” 아직껏 그 기분인지 연신 웃는다.
“신 나서 들떠있는데 형님이 말하데요. ‘야, 너 만나니까 너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구나. 갈 시간 됐겠다. 기차 놓칠라. 지금 몇 시냐?’ 하고 물으시겠지요. 저야 시계가 없었지만, 형님은 시계가 있었거든요.”
“형님 시계 어떻게 하셨어요? 하고 되물었지요. 형님이 뭐라는지 알아요? ‘야, 너 보러 가야겠는데 돈이 있냐? 시계 팔아서 기찻값하고 과자 산 거야. 이젠 시계가 없어. 하지만 돈 벌어 다시 사면 돼,’ 하시는 거예요. 훈련소 친구들과 좋다고 나누어 먹은 과자가 바로 형님의 시계였어요.”
“어머, 너무했다. 형님이 약간 어떻게 되신 건 아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촌 동생 보러 가겠다고 시계를 팔아요?” 흥분한 내가 물었다.
“우리 형님은 그러신 분이세요. 내가 형님이 큰 실수 하셨다고 하니까 뭐라 신지 알아요? ‘시계는 또 살 수 있어, 인마. 하지만 네가 날 보고 좋아 입 찢어질 걸 생각하니까 시계가 다 뭐냐 싶더라. 신나서 뛰는 네 모습을 어떻게 돈으로 치겠니? 걱정 마. 나중에 더 좋은 시계 살 거니까.’ 하셨지요.”
오헨리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준 것이 바로 사랑이었기에 우린 가슴이 아릿하고 뭉클했던 것이리라. 전 선생의 사촌 형이 시계 팔아서 사 온 과자, 그 과자 나누어 먹으며 행복했던 형제. 그 사랑을 돈으로 계산해 생각해 보고 나무랬던 나는 그야말로 속물 중 속물이 아니던가?
이번 성탄엔 나도 사랑을 살 수는 없을런지…. 세월 다 보내고 백발이 성성해지고 나니까 사촌 형의 마음을 알 듯하다. 앞으로 몇 번 남지도 않은 성탄이거늘….
<김성혜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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