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날개를 50여년 전으로 펼쳐본다. 이렇게 바람 불고 눈오는 추운 겨울에도 학교를 닫은 기억이 없다. 내가 졸업한 경복고가 자리 잡은 북악산 끝자락에서 불어오는 강풍에도, 가난했던 나는 겨울 코트 없이 까만 동복만 입고 등교하곤 했다. 난로에서 뿜는 연기가 굴뚝에서 안 나올때면 “오늘도 죽었구나” 하는 원망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교실에서 사용하던 잉크가 얼어서 글을 못 쓸 정도였으니....
‘KB4150 프로젝트’라 이름 한 경복고 41회 졸업 50주년 기념행사 초대장이 왔다. 졸업 50주년이라.... 강산이 다섯번 바뀌고, 까까머리 고교생들이 손자 손녀들을 둔 칠순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동물은 귀소본능이 있다 했던가? 미래의 구상보다는 옛 생각을 문득 문득 하게 되는 것은 미래보다 과거가 훨씬 많다는 증거다.
북악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활달하고 남자답다는 평을 곧잘 받던 그리운 동기들, 미래의 꿈을 키우던 교실, 곳곳에 추억의 편린들이 묻어 있는 그리운 교정을 찾아 이제 4월이면 모국을 향한다. 아담한 야외 음악당이 있고, 가을이면 국화 향기 진하게 뿜어내는 온실이 위치한 “꾀꼬리 동산”은 아마도 동기들의 가슴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우리의 꿈을 키워주던 곳이 아닐까? 늦게까지 책과 씨름하던 도서관, 지긋지긋했던 대학입시 모의시험, 여름에 개장했던 수영장, 그리고 그 당시 고교의 강당으로는 최대 규모인 대강당이 완공되어 우리가 처음으로 졸업식을 거행했던 일 등, 모두 모두 그립고 아련한 추억이다. 늘 배가 고플 때라 대개 점심시간 전에 수업시간이 바뀌는 틈새에 도시락을 먹곤 했는데, 그 다음 교시가 체육시간이라 모두 운동장에 나가야 하는데도 밥들을 먹고 있으니, 무서운 체육선생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뛰어 들어와 나는 맨발로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던 추억도 있다.
늙어갈수록 유한하고 외로운 인간의 실체를 느껴서인지, 옆에서 같이 웃고 울어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모교에 참 고마움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우정을 지키며 자주 연락하며 서로 사랑하는 많은 친구를 만난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1학년때 같은 반이었는데, 학년을 올라가면 반원이 바뀌므로, 1학년을 끝내면서 텅빈 교실에 의자를 둥그렇게 놓고 앉아 반이 바뀌어도 우리의 우정을 계속 지속하자는 굳은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이 오늘까지 이어지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육이오 전쟁이 끝나고 국민학교에 들어간 우리들은 대부분 가난할 때 사춘기를 지냈다. 신기한 것은 나중에 보니 우정을 다짐했던 친구들의 대부분이 여러가지 가정문제로 가슴에 아픔과 상처를 지닌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유별나게 서로 아끼고, 격려하며, 위로하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으니 참 아름답고 고마운 일이다.
곧 만날 동기들, 그리운 교정을 생각하며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 ‘KB4150’ 행사 현장으로 힘차게 날아간다. 벅찬 가슴을 안고….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배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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