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디에서 올까.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성급한 남녀 젊은이들은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고 자신들의 젊음을 뽐내고들 돌아 다닌다.
나는 지난 따뜻했던 며칠간 나의 꽃밭에서 머리를 밀고 나온 튤립 꽃이나 하이리스 봄꽃들의 새싹이 갑작스레 밀어닥친 눈 속에서 혹시나 얼어 죽지나 않았는지 걱정스러워 조그만 손 삽으로 눈을 밀어내고 새싹들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아무리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새싹들은 새파랗게 땅위로 머리를 내밀고 연한 초록빛을 하고 있었다. 뒤뜰 뒤에 우거져 있는 숲속의 앙상한 나무들 옆에 몇 그루의 죽은 나무들의 뿌리에도 새싹이 연한 녹색의 옷을 입고 방긋 웃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 의레히 자연스럽게 오는 이 봄이건만 겨울의 억센 마지막 몸부림 앞에서 “올해는 봄이 좀 더 늦게 오려는가 보다” 하고 마음을 졸이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봄의 전령은 뭐니 해도 봄의 문턱을 두드리는 매화로부터 온다. 내가 본 매화 중에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추억을 부르는 매화꽃이 피는 곳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이른 봄에 어머니를 따라 경남 진주시 근처의 조그만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외삼촌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마을입구에 도착 했을 때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초가집을 배경으로 낮은 흙과 돌로 빚은 돌담 위로 연분홍색 매화꽃이 눈부시게 피어 있었으며 보슬비 속에 안개가 드리워진 모든 마을의 초가집 마당에 핀 매화꽃들이 마을을 뒤덮고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 속의 풍경이 되어 있었다.
봄은 또한 여인의 마음에 봄바람을 타고 스며든다. “ 봄이 오면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을 연분홍 매화꽃이 피면 옷고름 입에 물고 그리운 님을 기다립니다.” 라는 옛적에 불렀던 유행가 가사와 같이 그렇게 봄은 여인의 옷고름 속으로 살랑살랑 파고든다.
조선의 화가 신윤복의 ‘미인도’ 라는 풍속화를 보면 봄나들이를 하러 나온 기생이 노란색 적삼에 연분홍색 긴 치마를 입고 만면에 화려한 미소를 지으며 예쁘게 춤을 추는 모습이 나온다. 이 여인의 젖가슴이 보일 듯 말 듯 하는 짧은 저고리 동정 속으로 훈풍이 불어들면, 여인은 사랑하는 님이 그리워 저렇게 춤을 추며 보고 싶어 안달을 하는가 보다. 봄은 정녕 여인의 것임이 맞는가 보다.
봄의 전령은 동양에만 오는 것이 아니고 서양에도 온다. 오래전에 한국의 MBC TV 방송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름다운 화원에 온 봄소식을 전하면서 칸쵸네 가수인 안드레아 무티가 가지각색이 어우러져 만개한 수천수만의 튤립 꽃밭 속에서 클래시컬 하면서도 로맨틱한 ‘엘리멘치타 (L’IMMSITA)’ 라는 애틋한 사랑의 가사가 담긴 칸쵸네를 프렌치 코트를 봄바람에 휘날리고 가신님을 그리워하며 애절하게 불렀다. 나는 이 낭만적인 노래에 매혹되어 그 한 소절을 흥얼거리고 다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노래의 멜로디를 잊어 먹었다. 노래의 제목까지도...
세월이 지나서 지난 2월에 팝페라 3인조 테너 가수인 ‘IL VOLO’의 신곡의 CD에 수록된 제목들을 보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CD에 ‘엘리멘치타’가 수록되어 있었다.
지난 가을에 집 앞 뒤뜰의 꽃밭에 심어 놓은 튤립 꽃들이 피면 엘리멘치타를 들으며 향기로운 봄의 정취 속에 파묻혀 보고 싶다.
<대니얼 김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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