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춘삼월(春三月)이 되면 무엇을 생각하는가? 계곡을 따라 졸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 무릎 정도 높이의 물길을 치장하듯 잔나무가지에 물방울 같은 작은 고드름이 어느덧 사라지는 이월이 가고 삼월이 왔다. 눈 덮여 꽁꽁 얼어있던 밭에 땅에 깔린 파리한 새싹을 한 뼘 길이의 창칼로 조심스레 파내려 가다 쭉 당기면 감싸고 있던 겨울 흙이 애원하듯 매달린 냉이 뿌리가 딸려 나온다.
한 참을 캐서 소복한 소쿠리 옆에 끼고 우물가로 간다. 아직은 차가운 물을 길어 살살 흔들어 씻어내면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물담은 뚝배기에 된장 풀어 막 씻어낸 냉이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된장과 어우러진 냉이 향이 봄내음으로 둔갑하여 아지랑이 피어 오르듯 맘을 설레게 한다. 바닥 드러낸 쌀독을 박박 긁은 몇 줌의 보리쌀로 지은 김 나는 밥에 찌개 한 술, 냉이 뿌리 몇 개 올려 꼭꼭 씹는다. 잘 씻는다고 하였지만 찌걱거리며 씹히는 흙이 입안에 화음으로 봄을 노래한다. 이런 건 모두 다 꼭꼭 숨겨진 옛날이야기.
바쁘고 정신 없이 살다 보면 개나리 꽃잎 가고 진달래 오고 목련이 피고 져서 떨어질 무렵에야 ‘아! 올 봄이 지나갔구나!’ 한 해 두 해 그리 지내다 머리 위에 눈 내리고 머리칼 한두 올씩 날려가는 게 우리네 허무한 인생사, 여름 오고 가을 지나 겨울이 오고 꽃피고 지는 봄이 가면 허탈한 웃음조차 느낄 수 없는 덧없는 우리네 삶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학군, 좋은 학교,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 의사, 법조인, 박사 그러다 더 바라는 것 부자 며느리, 잘 나가는 사위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한 인생 그래서 하려는 것들 좋은 차, 큰 집, 명품 가방이다.
며칠 전 지난 해 환갑을 맞이한 중년남성 부인의 이야기다. “전에는 저 사람이 가능한 빨리 은퇴해서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을 다녀오더니 일흔이 넘어서도 일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렇게 바뀌었냐고 묻는 나에게 남편이 설명한다. “한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산, 산, 산이야.” 이유를 묻자, “은퇴하고 할 일이 없어 이른 아침에 산에 갔다 내려와 집에서 아침 먹고, 점심은 산 중턱에서 친구들 만나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아내랑 운동한다며 산에 가니, 하루 종일 산, 산, 산이지. 그걸 보고 느낀 게 일을 놓지 않는 게 좋아. 대신에 저녁에 아내와 맛있는 식사하고 주말에 좋은 곳에 가서 골프하는 것으로 패턴을 바꾸기로 했어. 그게 내가 올 봄을 맞이하면서 세운 내 계획이야.” 빨리 은퇴하고 여유시간이 많기만 하면 최고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봄을 맞이하여 주변을 돌이켜 보며 더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간다니 참 좋아보였다.
애플의 창업자인 천재 개발자이자 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암투병을 하며 병상에서 남긴 마지막 메시지에서 ‘현재 당신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렀든지 상관없이 때가 되면 누구나 인생이란 무대의 막이 내리는 날을 맞게 되어 있다’며 배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 이상 돈 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건 인간관계라든가 예술 혹은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꿈같은 것을 실현시키는 것이라며 물질은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 있지만 다시 찾을 수 없는 하나가 ‘삶’이라 했다. 그리곤 삶이란 이웃,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잘 돌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몸과 맘을 오그라들게 하다 홀연히 떠나버린 차가운 겨울바람이 가고 겨우내 얼었다 풀리길 반복하던 땅에 새싹이 보이는 춘삼월이다. ‘삼월이 가고 사월이 오니 세금보고 해야 되겠다’ 이런 것만 말고 삼월의 첫 월요일이니 개학을 할 것이고 개나리는 언제 피고 잎은 언제 나오는지 진달래는 며칟날 왔다 핑크빛 사랑으로 얼마동안 하늘을 설레게 했는지 오늘은 목련이 몇 송이 피었고 어떤 녀석이 막내인지 꼼꼼히 살펴보는 한 숨 돌리고 나를 위로하는 봄날을 살아보면 어떨지?
<송권식 포토맥 문학회 후원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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