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나에게는 꽤나 풍성한 한 주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영화 ‘귀향’과 시인 윤동주의 일생을 그린 영화 ‘동주’를 보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 하자면, 윤동주 기념 사업회의 전 회장 노세웅 시인이 영화 ‘동주’를 보러 같이 가자고 이메일을 보내 왔기에 사실 나도 보고 싶었던 차라 극장으로 갔었다. 그런데 비록 금요일이라고 해도 개봉일인데 우리 일행 8명 이외에는 관객이라고는 달랑 2명이었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2명을 상대로 영화를 상영할 처지였다는 말이다.
노세웅 시인이 탄식하듯 이런 영화를 상영하여 주는 영화관이 고맙고, 그리고 좀 더 호응해야 이러한 영화들을 계속 상영해 주지 않겠느냐 하는 말을 듣고 나 또한 그러한 그의 탄식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맹목적인 애국심이나 어느 단체에서의 홍보용 정도의 영화를 내가 보고 홍보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두 영화 다 아주 수준 높은 영화였다.
먼저 영화 ‘귀향’을 보았는데 나의 집사람은 동행을 거절했다. 충무공 이순신을 주제로 한 영화 ‘명량’에서 지루한 전투 장면과 피범벅의 장면이 넘쳐나는 영화가 꽤나 싫었고, 그래서 귀향 영화 또한 그러한 영화일 것이니 싫다는 것이 이유이었다.
그러나 영화 귀향은 극본이 탄탄하고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였다. 오래전 영화인 ‘서편제’ 보다는 다소 못했으나 도입부의 영상 촬영, 틈틈이 한의 판소리 삽입 등이 좋았고, 그리고 다소 미국인들에게 난해할 지 모르겠으나 무당의 초혼 굿으로 과거와 대화를 연결해 주는 등 줄거리가 탄탄한 훌륭한 예술 작품이었다. 평소에 일본 대사관에서 데모하는 것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자고 하면서 이러한 영화가 훌륭한 방법일 것이란 나의 주장에 아주 적합한 영화라 기분이 흐뭇했다.
그리고 ‘동주’는 어느 특정 그룹의 관객을 상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윤동주의 ‘서시’ 한번 읽어보지도 않은 관객이 느끼는 감성이야 좀 못 할 수도 있겠으나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이 촉촉하게 적실 주옥같은 윤동주의 시를 삽입시키고 또 주인공들의 빼어난 대화 그리고 취재하는 형사와 주인공 윤동주와 송몽규 와의 대화를 통하여 영화는 우리에게 시대의 잘못된 흐름과 아픔을 또 일제에 인체실험이라는 만행을 흑백 영화라는 배경을 깔고 잘 전개했다.
동행했던 최 모 시인이 윤동주와 정지용의 만남, 외사촌끼리인 송몽규와 윤동주의 숙명적인 만남에 대해서 윤동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사실과 다른 점을 나에게 설명 해주었고 그래서 새로이 알았지만 영화 자체에 흐름에는 부자연스러움은 없었다.
나는 거듭 이야기 하고 싶다. 일본대사관에서 데모하는 분들 이 영화를 꼭 보시고 위안부 할머니의 인권과 명예회복의 먼 것 같으나 지름길이 무엇인지 한번 고민 해 보시라고 말이다. 그리고 좀 흘겨보는 글을 이곳 대사관에 관계되는 분들에게 남기고 싶다. 나라면 얼마의 정부 돈이 되더라도 초대권 몇 백 장이라도 사서 홍보 효과가 있는 미국 언론, 연방, 지방 정부 관계자들에게 돌려주겠다.
<이영묵 전 워싱턴 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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