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 일과는 나무를 올려다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지난 여름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린 밤, 집 입구에 자리잡고 있던 아름드리 나무가 쩌억 갈라졌다. Y자 모양의 나무는 윗부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바람에 아랫 부분이 벌어진 것이다. 급히 나무 제거 회사에 연락했다. 전문가는 베어내기를 권하였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나무가 잘려나간다면 집의 전체적인 균형이 맞지 않을 뿐더러,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상의 끝에 윗부분의 가지를 자르고 벌어진 틈을 와이어로 묶는 응급 처치를 했다.
다시 봄이 왔다. 주변 나무에서는 반그늘이 질 정도로 잎이 돋아났다. 하지만 잘려진 나무에서는 아직 기척이 없다. 가지 끝에서 움찔하는 기운도 느껴지는 것같아 아침 신문을 주울 때면 어김없이 하늘을 배경으로 가지에서 희망을 찾는다.
여기, 희망조차 사치인 사람들이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동거차도 언덕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8개월째 천막 생활을 하며 인양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바다에서 탑승객 476명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하는 사고. 실종자 9명을 포함해 304명이 희생된 비극이다. 이 중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246명이 포함돼 전국민에게 충격과 침통을 안겼다.
권남희(고 박성복 군 어머니)씨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렇게 봄 오는 것도 싫고, 사계절은 돌고 도는데.... 수학여행 간 애들은 오지 않고...”라며 울먹였다. 어찌 그 슬픔을 가늠조차 할 수 있으랴. 분명 그들에게는 ‘마음속에서 슬픔의 뿌리를 캐고 상쾌한 망각의 약을 써서 가슴을 짓누르는 독소를 제거하고 싶을 것’-셰익스피어 맥베스-이다. 유가족에게는 화려한 봄날은 그저 모노톤의 정물화일 뿐이다.
최근 고국의 뉴스 대부분은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몇몇 정치인들은 선거로 인해 4월 16일이 조용히 묻히기를 바라겠지만 그날은 분명 잔인한 사월의 하루였다. 얼마전 세월호 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렸지만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진실은 여전히 물속 깊숙이 수장되어 있고, 슬픔은 망각과 조롱에 시달리고 있다.
현 정권은 지금, 그간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사죄의 절을 하면서 한 표를 구걸하는 읍소를 하고 있다. 선거때면 낮은데로 임하소서, 선거끝나면 ‘아몰랑’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가장 불의는 고통을 희생양으로 하여 이룬 승리”라고 했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집권당이 승리한다면, 특히 그 승리가 국민의 고통을 묻은 채 얻어진 것이라면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읍소한다,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 유가족에게 치유의 봄이 되기를.
<양태환 로턴,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