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새벽을 기억한다. 민족사 최초로 소외되었던 민중의 승리를 밝힌 그 여명(黎明). 1997년 12월 19일 아침, 우리 모두 뜬 눈으로 지샌 새 역사의 전야였다. 웅크렸던 가슴을 활짝 펴 기지개를 한 민중들의 저 그늘진 얼굴에 활짝 핀 조금은 어색했던 환희의 미소.
서울과 부산에서, 대구와 광주에서, 강릉, 수원, 전주에서 그리고 인천, 대전, 순천에서 민중들이 그늘진 마음 속에 새 날을 그리며 두려움을 털고 일어나 숨죽이며 던진 한 표 한 표가 민심이 되고 천심이 되어, 우리 민족의 5천년 역사에서 최초로 민중이 그들의 자의에 의해 정부를 선택한 이변을 목격하는 그 날의 감격. 그들은 마침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울 수 없다,” “한국놈들은 쥐새끼 같다”며 파쇼 군사정권의 영구집권을 두둔하고 한국 민중들의 민주 염원을 비웃던 열강의 저주를 비웃기라도 하듯 1948년 4.3대학살의 상처를 아직도 치유 못한 제주도에서, 분단의 소용돌이에서 붉은 선혈을 강물처럼 쏟았던 여수와 순천에서, 군사정권의 종말을 타종한 부산과 마산에서, 그리고 임신부의 복부에 총검을 꽂던 5공의 군발이에 맞서 맨주먹으로 총칼과 맞섰던 우리 오누이들의 피투성이 얼굴이 어른거리던 그 새벽을 나는 기억한다.
악랄한 군화발에 길가의 잡초처럼 밟혀도 항의 한 마디 못하고 웅크리던, 비겁해 보이기까지 했던 민초들, 그들은 일제의 경찰에 당할 때만해도 그토록 서럽지 않았었다. 무고하게 빨갱이로 몰려 개죽음을 당한 민족주의자들은 몇 만 명이었던가? 연좌제로 묶여 살 길을 빼앗겨 거리에 내몰린 우리 형제가 몇 십만 명 이었던가?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니 그게 죄가 되어 인간으로서 당할 수 없는 갖은 모욕과 차별과 불이익을 당해야 했던 저들은 또 몇 백만 명이었던가? 아니 사랑하는 가족의 생사확인 마저 거부된 문명의 사각지대에 매몰되어 저들 분단에서 어부지리를 하는 군사파쇼 세력이 막고 있던 오지 않은 통일의 그 날을 학수고대하다 죽어간 이산가족은 또 몇 천만 명인가?
나는 뜬 눈으로 새운 어제 아침, 시시각각 올려지는 승전고를 페이스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아! 우리는 마침내 해냈구나" 라는 감회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유신의 잔재 새누리당의 승리를 외치던 유신언론들의 여당의 완승 예보로 기대하지 못한 이 민주진영의 '돌발적' 승리는 그래서 더욱 감격적이었다. 이 승리는 우리 민족사를 왜곡시켜 온 분단 이데올로기와 지역주의, 저 군사독재의 무한 폭력, 압제, 수탈과 불의에의 조종(弔鍾)이자 민족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마침재 민족적 정의의 광활한 지평을 여는 힘찬 전진의 신호탄이다.
1997년의 승리가 동학혁명, 3.1독립선언, 해방, 4.19혁명, 박정희의 몰락, 5.18민주항쟁으로 이어진 성전(聖戰)의 첫 교두보였다면, 4.13 총선의 승리는 유신잔재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의 동거 유혹을 단호히 거부한 민주회복, 민족화해, 민족통일, 그리고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 승리의 약속이다.
한동안 수구 파쇼세력의 집권으로 남북의 대결구조는 50년 이전으로 후퇴했지만, 바로 이 같은 역사의 반전은 우리 민중이 민족대단결을 통한 통일의 우수성과 현실적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어 조만간 동족을 죽이기 위해 들었던 칼을 부셔 보습을 만들고, 창을 녹여 낫을 만들 정의로운 민족사의 새 지평이 동터올 것이 명약관화 하다.
실존철학의 태두 프레드릭 헤겔은 “역사의 주체는 변혁을 주도하는 영웅”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민중이야말로 민족사에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 되는 새 기원을 활짝 연 영웅이 되었다. 4.13선거 “투표소의 혁명"으로 밝힌 정의의 봉화는 영원히 꺼지지 않고 민족사의 전진을 밝히는 선두(先頭)가 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이선명 US News 주필 볼티모어, MD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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