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스톤에서 뭐가 가장 인상적이었니?” 옐로스톤 다녀온 손자녀 데리고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할아버지가 물었다. “매드맨 사건요. 할아버진 아마 믿지 못하실걸요.” “매드맨 사건?” “예. 옐로스톤서 만난 코리안이에요.” “그런데 왜 매드맨이야?” “그 사람이 엄마 아버지한테 미친듯이 막 덤볐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냐? 왜 그랬는데?”
우리 질문에 어린 녀석들이 서로 다투어가며 설명하려 드니까 이야기의 종잡기가 더 어렵다. “얘들이 뭐라고 하는 거냐?” “아버님, 옐로스톤 가면 특이하고 신기해 보이는 게 많잖아요?” 며느리의 설명이다. “손대지 말라고 여기저기 써 붙였죠. 그런데도 한국계로 보이는 두 애가 가는 데마다 이것저것 만지며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얘들아, 만지지 말라고 써 있잖니?’ 하고 제가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 애들 아버지가 노발대발해서 네가 누군데 남의 애들한테 감 놔라, 배 놔라 하냐? 사람을 무시해도 푼수가 있지, 넌 얼마나 잘났냐, 잘못 했다고 당장 빌어라, 아니면 용서 않겠다, 네 남편은 뭐하냐, 그런 널 말릴 줄도 모르냐,’ 하면서요. 까딱하다가는 큰 싸움 나겠더라고요. ”
“그뿐 아녜요. 우리는 여태껏 들어보지도 못한 나쁜 소리(?) 죄다 늘어놓으며 주먹 휘두르는데 우릴 죽일 것 같았어요. 어찌나 겁나던지!” 손자의 말. “아범이 나서서 미안하다. 우리 뜻은 그게 아니었다. 잘못 만졌다가 혹 애들이 다칠까 걱정돼서 그랬을 뿐이다, 하며 달래서 겨우 무마했어요.” “그런데요, 주차장에 갔더니 그 사람들이 아직도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잖아요? 여기서 맞아 죽는구나 싶어 ‘하나님, 살려 주세요’하는 기도까지 했어요.”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자기넬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하는 소리를 계속해 가면서 다시 덤비겠지요. 아마 총이 있다면 총질도 했을 거예요. LA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우리도 코리안이지만 어찌나 창피스럽던지요. 어머님이 말씀하셨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체면이 중해서 까딱 잘못 무시당했다 싶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빌지 모르니 조심하라고요. 아범이 ‘미안합니다. 오해가 있었다면 우리 잘못이 큽니다,’ 하자 수그러들어 그 자리를 뜰 수 있었어요.” 며느리의 말 이해하고도 남는다. 종종 우리는 길에서, 식당에서, 아니 어디서든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는 아이들 자주 본다. 그래도 그 아이들한테 뭐라 말 한마디 하는 어른 없다. 오히려 봉변 당할까 겁나 슬슬 피하는 형편이다.
우리가 도착한 식당은 초만원이었다. 기다리는 입구조차 꽉 차서 옴치고 뛸 수가 없다. 예약하고 왔지만 그래도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7시 예약하신 김 선생 댁 여섯분 다 오셨어요?” 웨이트리스가 묻는다. “아니, 똑같은 질문을 30분 전에 했는데 이제 와서 또 물으면 어쩌자는 거요? 사람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하며 큰소리 치는 노인네. 김씨라지 않던가?
나는? 나라고 다르던가? 소위 잘 나가는(?) 배달민족이요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날뛰는 정치판도 다 거기서 거기다. 낯이 뜨겁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즈음 미국정치판도 막가파 식이다. 한국 따라 잡겠다. 미국의 타락? 아니지. 나마저 미국물 먹으며 활개 치고 살 수 있는 곳이 미국 아니던가? 나 같은 세계의 어중이떠중이들의 집합체가 미국일진대 그래도 그만하길 천만다행이지. 손자 녀석이 날 쳐다본다. “저 사람 한국사람 맞지요, 할머니?” 하는 질문이 아이 얼굴에 가득하다. 그 사람 얼굴에 우리 모습이 자꾸 겹쳐 뵌다.
<김성혜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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