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百想) 장기영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세미나’가 28일 오전 10시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 토파즈홀에서 열린다.
언론의 개척자이자 경제, 정치, 체육, 문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의 삶을 재조명한다. 장재민 서울경제신문 이사회 의장과 이종환 서울경제신문 대표이사 부회장이 기념사, 이병규 한국신문협회장이 축사를 한다. ‘시대의 거인, 백상이 남긴 유산’을 주제로 정대철 국민의당 고문(정치),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경제), 정동구 전 한국체육대학교 총장(체육),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언론)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백상의 업적을 살핀다.
백상은 1916년 5월2일 서울에서 태어나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1934년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에 입사, 1950년 부총재를 지냈다. 1952년 사임 뒤 경영난을 겪던 조선일보 사장을 하다가 1954년 태양신문을 인수해 제호를 한국일보로 바꾸고 자매지로 코리아타임스와 주간스포츠를 창간했다. 1960년 국내 첫 경제신문인 서울경제신문과 첫 어린이신문인 소년한국일보, 1969년에는 역시 첫 스포츠신문인 일간스포츠를 창간했다.
1964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이 된 백상은 ‘불도저’ ‘왕초’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3년 반 동안 산업근대화와 경제개발을 이끌었다. 학창 시절 농구선수로 활약한 백상은 대한축구협회장(1961),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1966),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1967) 등을 역임하며 한국의 스포츠 발전과 국제 지위 향상에 일조했다. 1969년에는 한·일 간 현안 타결을 위해 대통령 특사로 일본에 파견됐으며, 1973년 제9대 국회의원(종로·중구)으로 당선됐다.
1977년 4월11일 한국일보 집무실에서 심근경색증으로 별세했다. “나의 뼈는 금융인이요, 몸은 체육인이며, 피는 언론인이다. 그리고 정치인은 나의 얼굴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신동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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