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데, 옆에서는 빨리 걸으라고 독촉이다. 자칫 발을 잘못 내 디뎠다간 넘어질 텐데. 날씨는 또 왜 그리 추운지...
옆을 보니 동생은 엄마 등에 업혀간다. 참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왈칵 울음이 복 바쳐 올랐다.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엄마는 “왜 애는 울리고 그러시냐?”며 역성을 들어주신다. 기억이 이렇게 생생한 걸 보면 그 날 겪은 고생이 아마 상당했었나 보다.
그날은 우리 식구가 시골, 부여에서 서울로 이사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6.25 전쟁의 막바지이거나 전쟁이 막 끝 난 때였었던 것 같다.
시골 사람들은 서울 갈 때면 왜 그리 어두울 때부터 일어나 부산을 떠는지 모르겠다.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시골 길을 어린 아이가 자다 말고 일어나 걸으려니 짜증이 났을 것이다.
엄마는 울고불고 떼쓰는 동생을 내려놓고 옆에 계신 다른 분, 아마도 할머니의 등에 업혀주고는 대신 나를 업어 주셨다. 업히는 순간, 세상의 온갖 시름과 걱정이 한 순간에 다 날아가 버렸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무서운 아버지가 옆에서 아무리 뭐라 하셔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엄마 등에 업혀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나를 안심시킨 건 엄마의 냄새였다. “그래, 바로 이 냄새야!” 예전엔 무척 익숙했었는데 동생한테 엄마를 빼앗기고는 잊고 있었던, 엄마의 그 냄새가 나를 제일 먼저 감동시켰다.
엄마 등에 딱 붙느라 나는 내 귀를 엄마 등에다 바짝 댔다. 엄마가 걸으시며 옆의 분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신다.
“그래 맞아! 바로 이런 기분이야!”엄마의 목소리가 등을 타고 묘하게 울리며 들려온다. 작은 말 소리도 크게 울려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너무도 흡족한 나머지 깜빡 잠이 들었었던 것 같다.
백마강 나루터에 도착해 배를 타고 시골에 남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한 후 배 위에서 시커먼 강물을 바라본 걸 끝으로, 내 필름은 끊겼다. 아마도 잠이 든 모양이었다.
우리는 본향을 떠나 이 세상에 순례자로 왔다고 한다. 그리곤 본향인 천국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본향은 어머니의 등, 아니, 엄마의 품 같은 곳이 아닐까? 엄마의 냄새와 소리가 정겹게 느껴지는 그런 곳이 아닐까?세상이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아무 근심걱정 없는 곳, 두려움을 잊게 하는 곳, 마냥 편하고 그러면서도 그 안락함이 아주 친숙하게 느껴지는 곳, 그런 곳이 엄마의 품이다. 그런 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어머니날을 맞아 엄마에 대한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 첫 추억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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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수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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