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국제 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가 휩쓸고 지나간 2001년 한국은 더 이상 정년을 보장해 주지도 않을 뿐더러, 능력보다는 학연, 지연이 더욱 공고(鞏固)해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었다. 갓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는 과도로한 업무와 잦은 회식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우리 미국 가자!”고 했다. “그래, 가자.” 마침 그 즈음 유럽 여행을 다녀 온 나로서는 타국앓이(?)를 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는 ‘어떻게?’, ‘가면 뭘 해 먹고 살어?’, ‘비자는?’ 많은 질문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서른 초반의 패기는 두려움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나에게는 워싱턴 지사 오픈 이라는 인연이 생겨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었고 친구는 친척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우리의 미국 생활이 시작됐다.
시간이 흘렀다. 친구 부부는 아이가 생겼고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돼 한국의 어머니를 초청해 아이를 부탁하게 됐다. 2년 후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친구 어머니는 가게를 운영하느라 정신이 없는 아들 부부를 대신해 장난 꾸러기 두 아들을 돌보고 집안 살림까지 도맡았다. 게다가 당뇨까지 앓고 있어 매일 약을 챙겨야 하는 신세였다.
어느날 친구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라.”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보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6년 동안 핏덩어리 둘이나 키워줬더니 이제와서 한국에 돌아가란다.” 어머니는 굵고 소금기 가득한 눈물을 흘렸다. “미국 생활에 적응도 했고 한국 할머니 친구도 사귀게 됐다. 한국 가봐야 이제 갈 데도 없다. 작은 아파트 한 채 있는 것 팔아서 큰 아들 사업자금 대줬는데 어디가서 살란 말이냐? 무엇보다도 어린 손주들 눈에 밟혀서 갈 수가 없다. 애들이 유치원 갈 때가 됐다고 한국으로 보내는 게 말이 되냐? 니가 말 좀 잘 해봐라. 이 새끼들 놔 두고 어떻게 가란 말이냐?” 친구 역시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걸 알지만 아내가 애들도 어느정도 컸으니 남편과 애들하고만 살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럼 내집에서라도 살면서 애들 보고 싶을 때 자주 볼 수 있도록 하면 안되겠냐고 제안했지만 체면 때문에 그것도 곤란하다고 거절했다. 그 후로 친구를, 아니 그 날 이후엔 그 놈을 만나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49.6%로 1위를 차지했다. 뿐만아니라 노인 자살률(2015)도 부동의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가족과의 의사소통 단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140만명에 달하는 독거노인 중 상당 수는 폐지를 주우러 길거리를 헤매거나 일당 2만~3만원을 벌기 위해 하루종일 무료 지하철을 이용한 배달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이러다가 일본처럼 일부러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는 노인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차라리 고독과 빈곤에서 하루를 연명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가난, 질병, 고독과 함께하는 장수는 축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5월이다. 신문을 펼치면 ‘가정의 달 특별 이벤트’라는 광고가 온통이다. 녹록지 않을 한국에서의 노년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지...잊고 있던 그 분이 생각난다.
어머니! 건강하시죠? 당신이 해주시던 황태찜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양태환 로턴,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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