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대학생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순간 ‘무슨 일 있나?’ 철이 들면 안부전화 하는 날도 오겠지만, 아직은 용돈이 떨어지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가 오다보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지난 학기에도 중간고사 전에 서너번 전화해서 ‘공부가 너무 힘들다’며 한번씩 쏟아내곤 했기에 전화벨이 울리면 살짝 긴장이 된다. 그리고 다시 소식이 없어 연락하면 ‘잘 지내요’란 문자만 날리는 아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심상치 않다. 그냥 힘들단 너스레가 아니란 느낌이 온다. 두달 전쯤 꾸물거리다 여름 인턴십 기회를 놓쳐서 전화로 꾸짖는 중에 수화기 너머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 우니?” 그러자 “엄마, 나 너무 힘들어”하며 흐느끼는게 아닌가? 순간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마음을 가다듬어 “괜찮니?”라고 안부를 묻는데 나도 와락 눈물이 났다. 초등학교 이후 아들이 우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I hate this school. 무슨 놈의 학교가 맨날 6-7시간씩, 그리고 주말에도 밥 먹고 공부만 해야 학점을 받아? 다른 애들은 다 천재 같아. 난 기타 치며 노래도 만들고 부르고 싶은데… 주말엔 아이들과 노는 자원봉사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요.”
직업 의식이란 게 이런건가? 어느새 나는 상담사로 옷을 갈아 입고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있었다. “너 정말 너무 힘들었겠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견뎠네. 와! 대단한 걸.” 가슴은 쿵쾅거리고 걱정은 밀려오는데 머리로는 침착하게 그의 고통을 들어주고 있었다. 상담소에서 학업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학생들을 적지 않게 만나왔기에 걱정과 불안으로 잠을 설쳤다. 몇번 통화하며 잘 다독여 힘든 시간을 넘긴 지 한달만에 다시 걸려온 전화였다. 중간고사 두 과목을 망쳤다며 공부에 대한 압박과 부담이 너무 커 깔려죽을 것 같단다. “좀 더 견딜 수 있을거 같아? 졸업까지 2년만 더 버티면 되는데.” 그러나 아들의 답변은 “엄마, 나 죽을거 같이 힘들어.”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며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끔 ‘조금만 더’를 외치다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한 아이들의 비극적인 뉴스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고생도 모르고 너무 나약하게 키워 그런가’란 자책과 ‘잘 버티라고 좀 세게 말해야 하나?’란 생각도 스친다. 아니면, 좀 쉬었다 가도 괜찮다고 말해줘야 하나? 마음이 혼란하고 두렵다.
한참 고민하고 기도한 후 나는 ‘그냥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든 시간을 함께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떤 결정과 답을 주기보다는 어떤 상황에 놓이든, 설사 바닥에 떨어져도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지지대와 버팀목이 되어 ‘아들아, 좀 쉬었다 가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기로 했다. 그 후 2주 동안 2 - 3일에 한번씩 전화로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아이가 압박과 걱정으로 부터 좀 풀렸을 때 몇 가지 옵션을 보여주었다.
갭 이어(Gap year)를 하며 일 하고 여행도 하면서 넓은 세상을 배우는 시간을 갖거나, 조금 쉬운 대학으로 옮겨서 공부 외에 하고 싶은 음악과 자원봉사 등 좀 여유있는 대학생활을 갖는 것, 혹은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방법도 소개하며 ‘꼭 학교를 4년에 마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실패자’란 스스로의 압박에서 좀 벗어나 다른 관점을 볼 수 있게 도와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엄마, 시간은 가네. 그 힘들던 시간도 지나갔네. 이제 좀 살것 같아. 그냥 여기서 4학년까지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동양엄마들처럼 말해주지 않아서 감사해요.”
아이도 나도 큰 테스트를 치룬 느낌이다. 앞으로 많은 현실의 산들이 다가올텐데, 그 때마다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편이 되어 지지해주고, 때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용기의 말을 건네는 것 외에 부모된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많지 않음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counseling@fccgw.org
<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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