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에 담겨 있는 허리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뒷짐을 지고 산책을 하고 있는 여인의 뒷 모습 사진을 보면서 참 낯설게 느껴진다. 남편이 찍어서 보냈으니 분명 나의 모습일진대 내 자신의 뒷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어색하고 멋쩍기 그지없다. 얼마 전 60여 년 만에 내 오른쪽 귓바퀴에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처럼 생소하다. 마치 자동응답기에 담겨있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몸둘 바를 모르는 식이다. 육신의 뒷모습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까지의 삶은 나의 뒷모습을 어떤 흔적으로 남겨놓았을까 불현듯 궁금해진다.
일주일 전에 방문한 남편 친구의 어머니, 리타(Rita)의 뒷 모습이 떠오른다. 남편 친구는 4년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 때 방문한 리타는 2년 사이에 남편과 딸, 아들을 차례로 잃고 세상의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진 채 생활하고 계셨는데 이번에 가 보니 그분의 거처가 간호 병동으로 옮겨져 있었다. 품위 있게 장식되어 있던 넓은 안식처가 이제 반평 남짓한 공간에 침대 하나로 한정되어 있음을 보고 정말 마음이 아팠다. 어쩜 인생의 마지막이 이리도 초라할 수가 있을까하는 서글픔에 목이 메어 대화도 나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걱정은 리타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나의 마지막을 염려하고 두려워하는데 기인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먼저 보낸 아들의 친구가 방문 하여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니 기쁘기 그지 없다며 해맑게 웃으신다. 점심후 아쉬운 작별을 한 후 보조의자에 기대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리타의 뒷모습에서 인간의 자존심과 긍지를 엿볼 수 있었고 생의 마지막 단계가 그토록 암울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얕은 희망도 가져보았다.
부인은 나를 형님이라 부르고 남편은 나를 누나라 부르는 부부가 있다. 그럼 둘의 촌수는 어떻게 되느냐며 웃곤 하는데 그들은 신혼 초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시고 4대가 함께 사는데도 항상 생글생글 웃는 낯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마음 고생이 많겠다고 손을 지그시 잡아주면 어르신들이 오히려 도움을 주신다고 내 어깨를 감싸주는 그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대견스럽고 뭔가를 배워가는 기분이 든다.
이렇듯 만났다 헤어지면서 만남의 여운을 갖게 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살펴보면 리타의 당당함과 꼿꼿함 속에는 얼마나 많은 서러움과 원통함과 분노가 끓고 있었을것이며 젊은 부부의 부드러움과 평온함 뒤에 가려진 나날이 부딪혀야하는 시련이 만만치 않을터이다.
주저앉아 통곡속에 묻혀지내기 보다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토대삼아 자신의 자리를 구축한 리타와 젊은 날의 자유로움을 희생하며 어른들을 모시고 살면서 그들의 삶의 지혜를 본 받으며 사는 젊은 부부는 주어진 삶을 내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편으로 삼아 긍정과 용납속에서 다스리고 있기에 그들에게서 온화함과 은은한 의지가 흘러나온다.
이제부터라도 투정보다는 이해를, 불만보다는 감사를 배우는 나날이 이어진다면 나의 뒷모습에서도 연한 풀향기가 퍼져나오려나?
<김 레지나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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