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인탁 변호사의 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읽고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사자성어가 딱 떠올랐다. 아는 게 병이고 화가 된다는 뜻으로 무언가를 잘못알고, 그것을 꼭 믿고 관념화 한 상태로 일을 벌일 때, 그 피해는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주위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크게는 히틀러의 과격한 민족주의, 레닌의 공산주의, 4대강 사업, 작게는 폐쇄적 사이비종교 등 무지로 비롯되는 작고 큰 피해는 선량한 보통사람들에게 엄청난 우환으로 돌아간다.
이 씨는 야권 3당 원내대표가 대통령께 5.18행사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한 것을 두고, 생일잔치에 무슨 노래를 부르건 알아서 할 일이지, 대통령이 그런 것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느냐고 했는데, 정말 대통령이 나 보훈처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면, 3당 원내대표는 바보들이다. 반대로 대통령이 5.18 광주 민주항쟁 행사 주관자쯤 된다면, 행사의 성격도 모르고 콩이니 팥이니 한 이 씨가 바보가 되는게 아닐까?
5.18 광주항쟁 기념일은 국회를 통과하고 국가가 지정한 기념일이다. 삼일절, 광복절과 같이 국가지정 기념일은 대통령이 주관자이고, 5.18은 주무 부처가 보훈처로 모든 행사준비, 경비, 식순 등은 보훈처의 소관사항이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군사정권의 무지막지한 탄압의 결정판인 5.18은 보수정권 그들로서도 잊고 묻어두고 싶은 사건이다. 5.18은 잠복해있는 활화산 같고, 확대되는 것을 염려해 극보수인 박승춘을 보훈처장으로, 행사준비와 진행에 시민사회 인사들은 얼씬 못하게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절대 금지라고 못 박아 행사에서 부를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 저런 거부감으로 유족이나 시민단체는 따로 시내에서 기념행사를 해 왔고, 5.18묘역에서의 정부 주관 행사는 관변행사로 이어져 온 것이 그간의 사정이다.
올해는 국회 권력지형이 바뀌어 야당은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고, 박 대통령은 즉답을 회피하고 보훈처는 검토했으나 불가하다고 한 것이 전말이다.
모든 중앙지 방송이 진행사항을 상세히 보도 했는데, 그런 저간의 사정을 보면 정부 당국과 상관이 있구나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눈치 챌 일을 변호사란 분이 사실 관계, 실제 하는 형이하학적 사실은 깜깜인 체, ‘새 날이 올 때까지’는 대한민국이 패망하는 날이 올 때까지로 해석될 수 있다느니, ‘임’은 김일성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라느니 하는 형이상학적 과장된 상상력의 허황된 말로 5.18 관계자, 시민사회 인사들, 작사자 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정말 비 호감이다.
그럼 박정희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새마을노래의 ‘새 아침이 밝았네’ 는 대한민국이 패망하고 박정희가 연민하는 일제가 다시 도래했다고 해석해야 되는 건가.
황석영은 이런 저런 논란에 임은 희생자, 새날이 올 때까지는 폭압적인 군사 정권이 물러가고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날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임’이란 단어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아주 친밀한 단어로, 사모하는 사람이나 남편을 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임은 우리 일상 전반에 존재하는 단어다. 그런 아름다운 뜻의 우리말인 ‘임’을 왜 김일성에 갖다 붙이는지 황당하다.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의 관념으로 남을 비난하는 글은 독자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런 이 씨의 글은 단정적, 과시적, 지식 자랑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었다. 신문은 모든 계층의 사람이 보는 사회의 공기다. 수준 높은 글, 지적인 글, 좋은 내용의 글의 판단은 글 쓰는 자의 몫이 아니라, 독자의 몫이다. 그런 점을 유념해 주었으면 한다.
<정영근 블라덴스버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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