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2개월의 짧은 기간, 육군종합학교(전시사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나는 1951년 1월 14일, 250명(50명은 해병대)과 신참 소모품 소위로 임관했다.
나는 49명의 동기와 보병 제7사단에 보직을 받고 다시 제5연대 3대대 1중대 3소대장으로 특명을 받았다. 소대병력 총32명, 소대장1 선임하사1 향도1 연락병2 그리고 9명씩의 3개 분대이다.
군대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2등상사인 선임하사와 2등중사인 향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군사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신병들이고 거의 학벌이 없는 시골출신들이었다. 그러나 연락병 2명은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성격이 명랑하고 아직도 장난기가 덕지덕지 얼굴에 묻어있으며 예지가 있어서 휴식시간에는 소대원들에게 웃음을 퍼주는 피스메이커였다. 어쨌든 나는 32명의 생명을 이끌고 전쟁을 해야 한다. 나도 이들에 비해 별로 나은 게 없다. 단기교육으로 제대로 군사지식도 없으며 실전전투 지휘경험도 없는 신참 소대장이다.
내가 소대장으로 처음 치른 전투는 1951년 1월 말, 영월 동남쪽 약 18km지점의 녹전리 전투였다. 해발 800m가 넘는 녹전리 뒷산 중령에 후퇴하던 인민군이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아군의 진격을 방해하고 있어 이를 퇴치하라는 작명에 의거해 치른 전투다.
부대는 주둔지에서 공격대기 지점까지 명령시간을 지켜 옮겨 대기했다가 여명을 기하여 공격을 개시한 우리 중대는 대대의 우측을 담당했다. 우리 3소대는 중대장의 명령으로 2소대와 1소대 사이에 끼어 좌우 공격대형을 유지하며 협공하게 됐다.
적은 높은 산, 유리한 지형에 진치고 공격하여 기어오르는 우리의 둔한 움직임을 하나 놓치지 않고 빤히 내려다보며, 우리가 산 정상 8부 지점에 접근할 때까지 숨죽이고 있다가 일제히 막강한 포화를 터뜨리며 우리 공격에 저항했다. 여기저기 박격포 탄이 터지고 기관포가 콩 볶듯이 퍼붓는 화력에 우리 소대원들은 정신을 잃고 머리를 눈 속에 파묻고 아예 전의를 상실하고 공포에 떨고 있다. 벌써 부상자가 2명이다. 부끄럽지만 사실 소대장인 나도 적의 막강한 화력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30여명의 생명이 내게 달려 있다. ‘군인은 전쟁에 살고 전쟁에 죽는다’는 장교로서의 사명감과 소대장의 책임감이 내 뇌리를 스쳐갔다. 있는 힘을 다해 이 전쟁에 이겨야 한다는 의지로 소대원의 공격을 독전하며, 무전기로 인접 2소대장과 공격대형을 유지하던 중, 교신이 끊겼다. 나는 2소대장이 유고를 직감하고 중대장에게 무전으로 보고하니 즉시 내게 2소대도 지휘하라고 명령했다.
우리가 공격해 올라 갈수록 적의 포화는 더 강렬하게 불을 뿜어댔다. 갈수록 사상자가 속출하고 공격은 더 힘들었다. 나와 소대원은 필사적으로 공격을 시도하고 있는데 “소대장님!!”하는 단말마의 짧은 외마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나는 동물적 감각으로 홱 뒤돌아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박 일병!!” 목울대가 찢어지는 소리로 단숨에 10여 미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박 일병을 끌어안았다. 벌써 박 일병의 가슴에서 뿜어나는 뜨거운 선혈은 하얀 눈을 붉게 물들이며 전투복을 피로 얼어붙게 했다. 박 일병은 임무를 훌륭히 마치고 돌아오다 적의 저격병의 조준사격에 희생된 것이다. 아, 그랬으나 어쩌랴? 슬프게도 우리는 이 전쟁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적에게 패하여 우리 부대는 후퇴를 했다. 66년 전, 지금도 6월이면 소대장으로 첫 전투의 잊어지지 않는 6.25의 상회이다.
<이경주 전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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