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세상의 소금이어야 하고, 빛이어야 한다. 소금은 음식을 썩지 않게 하고, 아픈 곳에 치료약이 되게 하고, 음식의 맛을 내게 한다. 기독교의 정신은 이 세상이 썩지 않게 하고, 삶의 희망과 용기를 잃은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기독교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대속의 죽음으로 하나님과의 회복을 이루었고, 그 결과로 영원한 미래의 천국을 부여받는 것이 교리의 핵심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이 사랑은 인간을 돕고, 인도하고, 교훈하고, 축복하는 것들로 나타난다.
기독교 학자인 C.S.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하는 덕목을 분별력, 절제, 정의, 꿋꿋함 이라고 정리했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기독교의 힘은 세상에 사는 사람 앞에서 모범이 되고, 모델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어떤 이기적이고, 욕망적인 목표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헌신과 희생. 그리고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이것이 본질적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7:12). 이렇게 살면 감사와 기쁨 때문에 나눔과 섬김을 통해 사랑과 평화가 이루어진다.
기독교가 세상을 향해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독교의 날카로운 무기가 무디어지고 녹슬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힘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독교의 본질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 본질은 신의 기독교가 아닌 인(사람)의 기독교로 입맛이 변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위하기보다 보이는 사람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증명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가 재물과 명예, 그리고 권력에 의존하게 되면 기독교는 칼이 아니라 솜방망이가 되어 버린다. 기독교가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사랑과 용서이다. 이것이 빠진 기독교의 진리는 진짜와 같은 가짜일 수밖에 없다. 사랑과 용서는 자기의 배가 아닌 남의 배를 위한 것이고, 소유가 아닌 공유, 독점이 아닌 완전경쟁, 대접이 아닌 섬김, 싸움이 아닌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전해야 하는 설교이고, 성도의 삶의 핵심이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빠지고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 복을 받는다고만 하면 일반적인 미신적 신앙에 치우칠 수 밖에 없다. 기독교의 복은 먼저 마음에서 시작되어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만족하는 신앙을 갖는 것이 복이다. 그 복이 눈에 보이는 물질적 소유와 쾌락적 만족만을 추구하면 구태여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따라도 별 차이가 없다.
사람은 변하고 세상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기독교의 본질인 대중적 사랑과 용서가 이기적 만족과 행복만을 추구한다면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닌 일반적 기복교로 변질될 것이다. 그런 세상은 맛을 잃어버린 캄캄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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