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1주년을 맞았다. 우리에게 있어서의 광복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 통치하에서 회복된 것을 의미하며, 본래 있던 국가가 국권을 잃었다가 되찾았다는 의미에서 1910년 대한제국이 있었음을 전제로 이 단어가 쓰여지는 것으로 안다.
정확히 말하면 1910년 8월 22일 일제 강제합방 후 36년간 온갖 박해와 수탈과 수모를 당하면서, 심지어 이름과 나라말까지 빼앗기고 나라 없는 민족의 슬픔과 설음을 죽기를 다하며 견뎌왔다. 국내외에서 많은 애국투사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고귀한 생명을 초개와 같이 죽어갔다.
제 2차 세계대전 일제의 패망으로 인해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의 무조건 항복으로 인한 연합군의 승리로 우리 대한민국이 광복을 했다.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북위 38도 선으로 남북이 허리가 잘라지고 북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관할하게 되었다. 미.소 이념대립으로 소련은 김일성을 앞잡이로 세워 북한 정권을 견고히 하고 남은 미국에서 귀국한 독립운동가요 애국자인 이승만 박사가 조직적으로 나라를 세워갔다. 10년이 걸릴 지 20년이 걸릴 지 알 수 없는 신탁통치를 이승만 박사는 결사 반탁을 내세워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만약 대한민국이 단독정부를 수립하지 않았다면, 허울 좋은 공산당의 노예가 되어 김일성 치하에서 연해주에서도 먼 중앙아시아에 디아스포라가 되고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불법 기습남침을 감행했다가 그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현재 북한 동포는 기아와 정치범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가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잿더미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 7대 부국인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이 부강부국의 기초를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용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던 일이다. 이런 위대한 건국대통령에게 광복 71주년을 맞는 지금에도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다. 건국 초대 대통령의 동상이 없는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밖에 없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공(功)과 과(過)가 있다. 잘하고 못한 일 분명히 따져 평가하되 추가 기우는 쪽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 통치시절에 확실히 잘못한 일들도 많이 있다. 부정선거, 사사오입, 거창양민학살, 4.19 등, 그래서 그는 1960년 4월 26일 대통령직을 하야하고 1960년 5월 29일 다시 이국 땅 미국 하와이로 망명해 1965년 7월 그곳 요양병원에서 운명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족적은 20세기 위대한 정치가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나라를 창건했으며 6.25전쟁이 발발하자 UN군을 참전케 했으며 한미방위조약체결, 반공포로석방, 그리고 일본이 실제적으로 점유하던 독도를 대한민국 영토로 편입시키고 평화선을 설치한 용단 등 이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없었다면 될 수 없는 일들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의 공과 과를 심도 있게 천착하여 진정으로 광복하여 좌경세력들이 넘어뜨린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동상을 광화문 거리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사이에 세워 진정한 광복(光復)울 이룩하기를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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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 전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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