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행을 흔히 떠난다고 말한다. 바쁜 일상 속의 하루에 젖다보면 누구나 “아, 며칠이라도 좋으니 어디로 훌쩍 떠나서 쉬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갖는다. 매일 다람쥐 쳇 바퀴 돌듯 주어진 일에 쪼들리다보니 평생 일만 하고 살다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오늘날의 여행은 사실 여행이라기 보다는 일로부터의 해방 내지 현실의 일탈에 가깝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먹고, 마시고, 쇼핑하는 것이 대체적인 여행자들의 모습이다.
여행(travel)의 어원은 고난(travail)이다. 옛날에는 방랑자나 순례자들이 미지의 세계를 방문해서 고난을 감내하며 창조주의 진리와 그 지방의 아름다운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그것으로 마음을 치유하려고 했었다.
최근에 아름다운 일탈을 자극하는 영화를 감상했다. ‘나의 산티아고’ 다. 이 영화는 독일 방송 스타 하페 케르켈링이 자신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800 킬로미터의 일명 ‘야고보의 길’을 걷는 순례의 길을 떠난다. ‘산티아고 길’은 진리에 대한 신의 대답을 구하기 위한 여행자들의 고난의 길이다. 하페는 서로 다른 국가에서 온 여행자들과 만나고 열악한 숙소에서 안타까운 개인 사연을 품은 사람들을 만나며, 발이 부르트고 노상에서 잠을 청하며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과 여정을 같이 한다. 멀고 먼 여정을 끝낸 후, 그들의 여정은 신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며, 800 킬로미터를 완주하는 것보다 완주를 함께한 동반자들과 함께 걸어가는 삶이 진정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30대 중반 영국에서 살던 시절에 알프스의 몽블랑을 여행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기차로 프랑스 국경을 넘어서 몽블랑의 에귀디미디 전망대(해발 3,842 미터)까지 계단식 산악열차를 두 번씩이나 갈아타고 가파른 톱니바퀴 선로 위를 숨을 죽이고 아슬아슬하게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눈앞에 펼쳐진 알프스 산들의 모습을 조망해 보았다. 몽블랑 정상에서부터 좌우로 장엄하게 펼쳐진 만년설로 덮여 있는 설산들과 그 사이로 송곳처럼 삐죽하게 솟아 오른 수많은 시커먼 산봉우리들이 알프스 산맥의 능선을 따라 줄을 지어 늘어 서 있었다. 그 산들 한 가운데로 몽블랑의 만년설이 부서져 내리면서 얼어붙은 빙하가 계곡을 이루어 산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군데군데 시커먼 구멍이 뚫려 있는 천길 깊이의 크레바스(crevssse)가 큰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건너편에 있는 당뒤제방으로 가보기로 했다. 겨우 한 사람만이 걸어갈 수 있는 폭이 좁은 이 길을 안내자와 세 사람의 여행자들이 몸을 밧줄로 한데 묶어 연결하고 안내자만 바라보며 밧줄을 꼭 잡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300여미터 떨어져 있는 시커먼 뿔같이 생긴 당뒤제방에 도달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이 큰 바위가 나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전망대로 돌아와 알프스 산들을 다시 바라다보았다. 창조주가 빚어놓은 신묘한 자연을 보면서 그분의 예술작품에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다. 여행은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잘 지, 무엇을 볼 것인지, 무엇을 얻었는지,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돌아오는 사색의 연속이다. 여행은 내 마음의 사색이다. 여행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사랑하게 한다.
프랑스의 작가 라브니엘이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의 언어 가운데 두 가지를 말한다면, 사랑과 여행이다.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다정하게 말해 주고 싶다. 여행을 떠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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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김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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