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계절, 산과 들에 익는 곡물과 실과를 보면 정말 먹지 않아도 배부를 계절이라 하겠다. 가을은 결혼 시즌이다. 지금은 그리 크게 계절을 타지 않지만 옛날에는 거의 추수가 끝난 후에 대사를 치렀다. 그래서 혼기에 든 처녀 총각은 풍년을 기원하며 추수를 기다린다.
“오-매 단풍 들것네”/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누이는 놀란 듯이/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누이 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바람이 불어 농사가 잘 되지 않아 혼사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누이의 생각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서정시이다.
이민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결혼식을 가을, 이때 하는 경우가 많다. 가을은 결혼의 가장 이상적 절기라 하겠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오곡백과 익어 풍성한 결실로 사람의 마음을 풍요의 너그러움으로 나누는 계절이라 하겠다. 이런 좋은 계절에 일가친척이나 다정한 지인들의 자녀 청첩장을 받고 결혼식에 참석하여 웨딩마치로 아름답게 출발하는 새 가정에 마음껏 축복을 빌어 주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 가끔 생각지 않던 청첩장으로 고민에 쌓여,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 이틀이 멀다고 결혼청첩장을 받는다. 어떤 날엔 2장식 겹쳐 받는 때도 있다. 교회, 학교동창회, 도민회, 전우회, 소속단체 등 연관으로 보내오는 자녀 손들의 결혼청첩장이다. 보내준 청첩장이 받는 사람이 기쁘게 축하해 줄 마음이 생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된다.
며칠 전에도 하루 걸러서 청첩장을 받았다. 고급스런 우윳빛 큰 사각봉투에 보내온 청첩장이다. 청첩장을 종이칼로 조심스럽게 열고 내용을 유심히 보았다. 분명히 박○○과 서○○의 아들 누구와 김○○와 이○○의 딸과의 결혼식을 하오니 부디 참석하셔서 축복해 달라는 내용의 청첩장이다. 그런데 신랑 쪽이나 신부 쪽 부모 이름이나 결혼 당사자들 이름으로 금방 떠오르는 인상이 없다. 한참 상대를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다. 혹 잘 못해서 후에 난처한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 골머리 억지로 생각해도 통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혹 아내에게 온 청첩장이 아닌가 싶어 물어 보아도 아내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다시 봉투를 살펴본다. 혹시 잘 못 전달된 게 아닌가하고, 그러니 좀 짜증이 나고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래도 또 다시 꼼꼼히 살펴보고 또 살핀다. 정말 어떤 때는 걱정까지 앞서게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쩌다 만나 명함을 주고 맥도널드에서 커피 몇 번 마신 기억이 나는 사람으로부터의 청첩장이고 또 연전에 어떤 단체의 일원으로 별로 친근하게 지내지도 않은 사람으로 보내 온 청첩장이다. 이런 청첩장들로 인해 잠시나마 고민하게 하고 오히려 불쾌한 감정마저 갖게 한다. 이런 사람들이 청첩장을 보내는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 축의금만 생각하는, 좀 그런 것 같다. 좀 정중히 신경을 써서 자녀의 결혼을 성스럽게 생각하고, 청첩장을 받는 사람이 진심으로 축복할 마음으로 받고 예식에 참석토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을은 복된 계절이다. 그리고 결혼시즌이다. 이 가을에 결혼하는 모든 분들의 앞날에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한다.
<이경주 일맥서숙 문우회 애난데일,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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