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 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그
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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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 번호를 적다 문득, 자신의 나이를 느끼는 중년의 남자는 11월의 나무처럼 허전해진다. 주민번호, 환등기, 일제시대 건물 같은 이미지들은 그가 부당한 역사의 잔재와 사회 구조에 갇힌 작은 개인일 뿐이란 것을 알려준다. 햇살조차 환등기의 빛처럼 생기를 잃은 11월. 난감해 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겨울 뿐이다. 멀리 보이던 저 이승 밖의 세상이 강한 측광을 던지는 지금,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혹시 허무를 받아들이는 일만이 남은 것이 아닐까.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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