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됐던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출발은 그다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정권 인수 팀장이었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하루 아침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로 교체됐다.
일설에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정적을 골탕 먹이려고 일부려 교통 체증을 유발시킨 책임을 지고 아이 엄마를 포함한 2명의 크리스티 보좌관이 감옥에 간 것을 두고 자기가 한 일을 부하 탓으로 돌린 크리스티에 분노해 트럼프가 갈아치웠다고 하는데 이는 트럼프의 도덕성을 감안할 때 별로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트럼프의 신임을 받고 있는 사위 재럿 쿠슈너와의 권력 투쟁에서 밀렸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크리스티는 2000년대 초 연방 검사 시절 쿠슈너의 아버지 찰스를 탈세와 증인 협박죄 등으로 기소해 2년간 감옥살이를 시킨 적이 있다. 당시 학생으로 검사를 꿈꾸던 그의 아들 재럿은 크리스티의 공권력 남용을 보고 검사 꿈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럿의 아버지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법정 기록을 보면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자기 처남의 입을 막기 위해 창녀를 고용해 모텔에서 함께 자게 한 후 이를 몰카로 찍어 협박했다. 그러나 처남이 이에 굴하지 않고 이 사실을 검찰에 알리는 바람에 협박죄가 추가됐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트럼프 딸 이반카의 남편 재럿이 얼마나 도덕성을 갖췄을지도 의문이다.
크리스티가 날아간 것은 조금도 아쉽지 않지만 더 큰 문제는 수석 보좌관 자리에 앉은 스티븐 배넌이란 인물이다. 백인 우월주의, 반이민, 반세계화, 반유대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해온 브레이트바트 뉴스의 총책임자였던 그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사실상 최고위직에 올랐다는 사실은 앞으로 트럼프가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 것인지 예고하고 있다.
2015년 11월 브레이트바트 뉴스에 출연해 배넌과 1대 1로 인터뷰를 한 트럼프는 기후 변화와 외교, 이민자 문제에 대해 이 뉴스 청취자들이 듣고싶어 하는 이야기만 골라 해 환심을 샀다. 배넌은 배넌대로 트럼프에 대한 아낌없는 아부와 조언을 해가며 박자를 맞췄다. 한 마디로 처음부터 둘 사이에 궁합이 척척 맞은 것이다.
일부에서는 공화당 주류 세력을 대표하는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의장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트럼프가 공화당 주류와 함께 일할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은 반무역, 반이민, 반소수계, 반워싱턴을 외친 분노한 백인 중하류층이다. 공화당 안팎에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혀 색깔이 다른 두 사람이 한 집안에서 충돌할 경우 트럼프가 누구 손을 들어줄 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트럼프도 일단 백악관에 들어가면 달라질 것이라며 낙관적인 견해를 표방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70 평생 사기와 파산, 오만과 무지로 점철된 삶을 산 인간이 대통령이 됐다고 겸손히 남의 말을 들으며 몰랐던 것을 배우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는 사람으로 바뀌리라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이 희박해 보인다.
만에 하나 그가 그런 정책을 펼친다면 브레이트바트 애청자들에게 배신자 소리를 들을 것이고 올해 그를 지지했던 분노한 백인들은 2020년 대선에서 그를 버릴 것이다. 트럼프가 성질을 죽이고 온건한 정책을 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게 돼 있다. 옆에 있는 배넌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4년 동안 미국이 올바로 굴러가리라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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