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제일 처음 보고한 사람은 윌리암 스텐튼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였다. 2007년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선 후보 경쟁이 한참이었을 당시 스텐튼 부대사는 3급 비밀 문서로 본국에 박근혜 관련 보고서를 제출한다. “박근혜의 몸과 영혼은 라스푸틴(Rasputin)과 같은 최태민에게 완전히 소유(Possessed) 당하고 있다” 는 대목이 보고 내용의 핵심이다.
박근혜가 최태민과 가까이 지내기 시작한 시점이 1974년 8월15일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로 보아 그때 박근혜 나이 23세, 최태민은 1912년 생으로 그의 나이 64세로 고령의 최태민이 박근혜를 육체적으로 얼마나 제압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많은 여자들을 농락한 경력과 실력으로 보아 가능할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박근혜를 완전히 지배했던 정황은 여러 부문에서 입증 되고 있다. 최태민을 라스푸틴으로 비유한 스텐튼 부대사가 하고자 한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스푸틴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한다.
라스푸틴은 1869년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 러시아 정교(Russian Orthodox) 가정의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8세에 러시아정교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 4개월간 수련한 경력이 있다. 정교회 성직자처럼 카속(Cassock; 승려복)을 입고 본인은 신의 영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예수가 행한대로 성령의 힘으로 환자를 치료한다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는 러시아 정교내의 한 이단집단이 가르치는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방법은 죄를 많이 짓는 것”, “죄는 죄로 몰아내야 한다”는 논리로 그의 추종자들을 가르치면서 여성 신도들을 성적으로 제압한다.
1903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의 후계자, 알렉세이 왕자가 불치의 혈우병을 앓고 있어 황제와 황후 알렉산드라가 깊은 슬픔에 빠져있을 때 라스푸틴이 황제와 황후에게 소개된다. 라스푸틴의 앞날이 잠시나마 열리는 계기다. 알렉세이의 출혈이 멈추는 기적이 일어난다. 라스푸틴은 이때부터 궁궐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황후와 가까워 진다. 니콜라스 황제가 전장에 나가고 궁을 비울 때 라스푸틴은 궁에서 황후와 밀회를 즐긴다. 이로 인해서 라스푸틴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요 관직도 그의 뜻에 따라 임명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고위 각료들의 부인들도 남편의 출세를 위해 이 가짜 승려에게 접근한다. 라스푸틴은 이들 부인을 농락한다. 최태민과 달리 라스푸틴이 황후와 가깝게 지낼 때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각료들과 귀족모임은 황제의 동생 프릭스 유스포브의 주도하에 가짜 승려 제거를 모의한다. 1916년 12월에 파티를 주선하고 파티에서 사용될 케이크에 독약을 넣는다. 독 케이크를 먹고 비틀대며 밖으로 나가는 그를 등 뒤에서 저격한다. 시체는 네바 강에 던져진다. 몇 달 후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 황족 모두가 처형되며 가짜 승려의 성기는 잘려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섹스 왕이며 황후의 애인 라스푸틴의 페니스’ 라는 설명과 함께 피터스버그 섹스박물관에 전시된다.
한국인으로서는 고려 말 승려 신돈에 비유될 수 있는 인물이다. 승려와 음행은 병립할 수 없는 용어처럼 인식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intaklee@intak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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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탁 변호사/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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