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441년 고대 그리스의 춘기대제(春期大祭) 때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초연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서양의 문명사에서 관객이 출연자들의 감정이입을 강요받는다고 주장될 만큼 강력한 감흥을 일으키는 정상의 드라마로 손꼽힌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 중 하나로서 ‘안티고네’에서 그는 인간의 사회적 동물로서의 집체(集體)적 관계에서 형성된 의무와 ‘독립된 인격’으로서의 가치추구 문제를 무대에 올려놓고 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안티고네가 ‘하늘의 명령’에 따라 크레온 왕의 ‘부당한’ 간섭을 거부함으로서 안티고네가 상징하는 인간의 양심과 윤리 그리고 크레온이 대표하는 전제적 체제 사이의 두 개의 상이한 원칙과 이해관계의 비극적 충돌을 다루고 있다. 이 충돌은 개인의 인간적 운명과 연관되어 그 가치관이 시험받는 과정세서 다양한 인간관계에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고대 그리스인 가운데 다수가 어느 특정 지역이나 시대를 구속하는 법 체제를 초월하는 ‘우주적 가치’를 신봉했던 사실을 퍽 흥미롭다. 헤라크리토스가 소포클레스 이전에 자연에 기초한 ‘일반법’의 우위를 주장한 바 있지만, 무대의 안티고네는 이 자연법의 초인적 구속력, 즉 인간의 양심과 윤리에 따라 행동한다. ‘신성(神性)’의 자연법을 위반하면 그에 상응한 벌을 받는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안티고네는 이 자연법이 지닌 보편적 가치의 영원성과 정당성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상학을 완성시킨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비교연구에서 사물의 이원성, 즉 시(是)와 비(非)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시인 쉘리는 “안티고네야 말로 비인륜(非人倫)적 규범에 대한 항거(抗拒)를 대표한다”며 예찬했다.
안티고네는 드라마에서 인륜과 도덕, 그리고 인간의 양심과 정의감을 “타협할 수 없은 절대적 가치”라고 확신했으며, 이 확신에 따라 그녀가 “나는 불의를 이해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라고 선언한다. 그녀는 끝내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성의 명령에 따라 ‘우주적 질서에 반하는’ 집단적 코드의 강요를 거부했다.
우리는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이 같은 혁명적 도전의 발자취를 자주 목격한다. 이 같은 도전은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프랑스 혁명, 노예해방 선언, 그리고 잔다르크와 유관순, 3.1독립운동, 4.19혁명, 5.18민주항쟁 등 역사의 발길을 크게 돌려놓은, 그리고 우리가 흔히 성전(聖戰)이라고 즐겨 부르는 커다란 운동의 원동력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루터의 종교개혁,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민권운동의 승리 등은 진리 혹은 정의를 위한 작은 저항의 불씨가 들불이 되어 막강한 기존질서를 괴멸(壞滅)하는 폭발적 위력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바람불면 꺼진다"던 촛불이 들불이 되어 전국을 휩쓰는 시민혁명으로 확산되어, 드디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처럼 집체적 질서가 세운 막강한 크레온 왕을 유추하는 청와대의 사이비 군주를 탄핵하는 세계사 초유의 불의, 부정, 비리 척결운동이 성공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은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다.
박근혜 탄핵은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새 패러다임의 민족사의 새벽을 깨우는 여명이다. 새 역사는 박정희 체제가 상징하는 모든 인적, 물리적 적폐(積弊) 청산이라는 시민혁명의 시대정신과 그 요구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나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에서 가장 험난했던 적진의 제1능선을 탈취한 시민혁명은 마침내 제2의 해방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한국의 시민혁명은 이제 세계의 정치사에 직접민주주의의 귀감이 되었다.
‘해가 지지 않은’ 대영제국이 그토록 초라해 보이던 간디 앞에 굴복하게 했던 ‘안티고네의 정리(定理)’를 다시 풀어보는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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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명 US News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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