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란 말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지만, 딱히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혹자는 정은 모양도, 냄새도, 맛도, 그리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그래서 없는것 같아도 있는 것이라 했다. 그 단어에는 우리 국민의 정서와 문화가 푹 녹아있는지, 또 다른 이는 우리만 느낄 수 있는 애잔하고도 그리운 무엇이라 표현했다. 언론인 정운현씨는 또한 “정은 따뜻하고 잔잔한 호수처럼 은근하며, 타산적이지 않고, 한번 생기면 쉽게 사라지지 않게 서로 주고 받는 것이 특징”이라고 정의했다.
정이란 단어가 포함된 표현을 생각해보니 “가는 정, 오는 정; 정 두고 떠나지 마; 고운 정, 미운 정; 인정미; 우정”등이 떠오른다. 이러한 말들을 보니 “정”은 혹시 상대나 사물이 자기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누구나 자기의 아이들, 또 손자 손녀들은 바로 정이 드는 것은 혹시 그들이 자기의 분신 때문이 아닌지?
이제 며칠 지나면 41년전에 아내와 한평생을 동고동락 하기로 서약한 날이 온다. 일월이었지만 푸근한 날씨에 약간의 잔설이 흩뿌려 대지를 깨끗게 덮은 날 우리는 간소한 혼인예배를 드렸다. 20대의 싱싱하던 젊은이들이 이제 흰머리에 주름이 많은 노년이 되었다. 새 인생의 출발에 기대감으로 흥분되었지만, 그러나 한편 혹시 알지 못하던 성격상의 간극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느낀것 같다. 그러나 이민온지 얼마 안된 나를 옆에서 돌보아 주던 누님의 말대로, 오랜 세월 서로 몸과 마음을 비비고 사는 동안 고운정, 미운정 다 들게 되었다. 친구를 좋아해 지금도 중.고등, 대학, 심지어 군대 친구들과도 가까이 지내지만, 그러나 아내는 으뜸을 차지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요,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가 되었다.
우리의 손잡고 걸어가는 41년의 인생길에는 태양빛 내려 쪼이는 목마른 사막길, 음침한 골짜기, 격랑의 파도 등 힘든 고비가 많았지만, 결코 잡은 손을 놓지 않았고, 간간히 사막의 오아시스와 평온한 평지와 바다도 경험했다. 이렇게 걸으면서 우리는 서로를 더 알아가게 되었다. 이제는 서로의 생각이나 말하려는 것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히 아는 한 몸이 되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노년의 이러한 행복은 행복중의 행복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오랜 세월 인내와 신뢰, 조언과 격려로 남편의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의 헌신 때문임이 틀림없다.
이제 이달 말이면 현 직장에서 21년을 포함해 총 32년간의 연방 공무원의 옷을 벗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된다. 오랜 세월 같이 근무하며 힘들때 손잡고 격려해 주고, 감당키 어려운 일을 만났을때 믿음의 동료들이 기도해 주며, 단순히 직장 동료 이상의 정을 나누어 준 그들도 나의 일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퇴임은 나의 일부분을 절단하는것 같은 아쉬움을 준다.
이제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그동안 정들고 익숙했던 일상을 뒤로하고, 미지의 땅에 가서 그들을 섬기고, 사랑의 정을 쏟아 부으라고 말씀하시는듯 하다. 바로 얼마전 단기선교차 잠시 다녀 온 미지의 땅과 거기서 만난 어린 아이들의 순박한 눈망울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보니 그곳에서도 정을 심고, 나누어 주시라는것 같아 가슴이 설레인다. 선하신 인도하심을 기대하면서 새로운 꿈을 꾸어 본다.
<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