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홍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잉카 여자'를 읽고 내가 전에 느끼지 못했던 아니면 몰랐던 것들을 보았다. 시문학에 대해서 전문적 안목을 갖추지 못했지만 지난 몇 년 시집을 읽고 이해하려 노력해왔다.
단언하건데 ‘잉카 여자'처럼 단번에 두 번 읽은 시집은 그전에 없었다. 쉽게 뜻이 전해지고, 넌센스가 없고, 내 맘에 쏙 드는 시어와 시편이 많아서, 마치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이 시인이 이미 알고 있는 듯, 나는 그래서 매료되었다. 그의 시편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시작하며 마치 재미있는 추리 소설을 읽듯이 책장을 빨리 넘겼다.
이 시집은 다수의 시편들이 한국, 미국, 남미, 구라파, 중국을 다녀온 기행시(起行詩)이다. 그의 언어는 평범할 정도로 내가 쉽게 읽을 수 있으며 현학적이나 최근의 시편들이 갖고 있는 지나친 모호성이 여기에 없다. 이런 말을 시인에게 해도 될지 모르나 어찌 보면 그는 참 솔직한 시인이다. 그러면서도 시의 품위는 손상되지 않고 있었다.
한국현대문학 작품 중에 춘원 이광수의 금강산유기(金剛山遺記)라는 에세이가 있다. 춘원은 그 글에서 역사적 인문학적 배경을 이야기 하다가 마치 참지 못한 것처럼 시 한편을 삽입하고 말았다. 시인이 글과 마음의 장인(匠人)이라면 참기 어려웠을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최연홍 시인은 시작(詩作)이 본기(本技)이기 때문에 그것이 시로서 여행기(旅行記)를 쓴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우리가 여행기를 읽을 때 제 각기 갖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허나 시인이 쓴 시에서 오는 느낌은 강렬하다. 이 시집의 시들은 솔직하며 직감적이어서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시를 잘 모르는 나에게 이 시들을 읽고 “느낌”이 왔다면 그 것이 바로 이 시인이 독자에게 기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집은 우리가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우리의 정신세계에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면 그 여행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아니면 뭔가 모자라는 여행이었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여행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만 보면 될 것이 아닌가 묻고 있는 듯하다.
이 시인은 우리를 그의 여행지로 안내하며 최고의 지성과 감성의 여행이 무엇인가를 설파한다. 오직 시로써. 이 시집속의 시들은 참으로 미묘해서 그 여행지에 우리를 데려가서 역사적 설명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비평을 하게 한 뒤 스스로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이 시집은 시인과 독자의 거리를 단축하고 그 둘 사이를 가깝게 해주는 교통수단 같다. 마치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을 이용한 여행처럼 내가 있는 이곳에서 내가 마치 실제로 동시에 그곳에 있는 것 같은 깊은 감정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혹은 실존적 느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들이 친절한 면은 우리가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을 준다. 시인이 의식했던지 안했던지 그것은 상관없다. 그가 그의 시를 대하는 이들에게 베푼 인간 이웃의 배려라고 본다.
나도 오랜 소원이 ‘Santiago de Capostel’에 가 봤으면 하는 꿈을 꾼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의 시상과의 공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이 시인은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많이 다녔고 한번 만난 인연에 대해 오래 잊지 못하는 의리를 갖고 있는 듯하다. 그의 영혼에는 감사가 넘치는 듯 보인다. 이 시집 “잉카 여자”에서 나는 분명히 영적 미를 추구하려는 그의 노력을 보았다. 한 가지 더하고 싶은 사족은 코펜하겐 여행에서 내가 좋아하는 키에르케고르를 잊지 않고 쓴 대목, 마치 날 생각한 배려처럼 고마웠다. 그래서 이 시집에 더 정감이 가는 것일까?
최연홍은 천성이 따뜻한 시인이며 현대시의 난해성을 타파한 서정 시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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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정신과의사, 수필가 볼티모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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