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곡을 듣고 있다. 방 전체가 아름다운 리듬을 타고 환상 속에서 움직인다.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이다. 슈만은 이 곡을 작곡하면서 “당신을 향한 단 하나의 마음의 표현” 이라며 직접 클라라에게 헌정했다고 읽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감미롭다.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론 우울하기도 하며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다. 학창시절에 많이 듣던 연가곡 ‘시인의 사랑’과 ‘리더크라이스’ 들도 그렇고 특히 트로이메라이를 듣고 있으면 현실과 꿈속을 넘나드는 행복에 잠기게 된다. 사랑은 이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펌프처럼 퍼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걸까? 피아노 스승의 딸인 클라라를 사랑한 슈만은 오직 그녀를 위해서만 작곡을 했다고 한다. 로맨틱한 선율이 혈관을 타고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스승이었던 비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렬히 사랑했던 그 비애와 순수한 사랑이 묻어난다.
이 음악은 4여년 전의 추억으로 날 이끌고 있다. 대학 다닐 때 단짝인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그룹미팅으로 등산을 갔다가 동성동본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둘이서는 한 눈에 반짝해서 아주 사랑했지만, 김해 김씨라는 올가미로 인해 친구는 무척 울었다. 우리 학교 앞 다방을 자기 학교 강의실보다 더 자주 찾았던 남자친구가 어떨 땐 행복과 동시에 측은해 보였다. 사랑이란 아픔을 동반한다.
엄격한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내 친구는 집안의 반대로 절교와 만남을 반복했다. 혼자의 시간을 갖고자 휴학도 고려했고 , 그 사람이 아니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을지로에 있던 훈목다방과 종로의 르네상스 음악감상실에서 정신 나간 사람마냥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음악을 들었다. 지금 듣고 있는 곡이 그때 많이 들었던 슈만의 피아노 곡이다. 친구의 이야기는 내게 사랑을 간접적으로 깨우치게 했다. 사랑은 부모와 가정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준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착실한 맏딸로서 이지적이고 소극적인 친구가 집을 뛰쳐나가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친구 엄마의 연락이 온 것은 딸이 자기 발로 돌아오길 기다리다 실망한 후였다.
음악은 뼈저린 아픔을 예리한 칼로 대보기도 하고 그 상처 언저리를 보듬기도 하면서 호흡을 고르고 마음의 문을 열게도 했다. 해 준건 없어도 함께 있어주고 같이 음악을 들었던 시간들이 친구가 깜깜한 고난 속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것 같다.
마지막 학기가 시작된 후 만난 친구는 얼굴이 반쪽이 되어 숨가쁘게 진전 상황을 이야기 했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얼굴에 웃음이 살포시 피어오르며 졸업 후에 결혼하라는 허가가 났다고 한다. 조사를 한 결과 동성동본이지만 8촌을 넘어서 괜찮다고 했다. 친구는 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되고, 남자 친구는 군대로 가서 당당하게 면회 다닐 수 있는 기쁨을 안고 해피엔딩으로 이어졌다. 우리 졸업식이 2월26일이었는데 그날의 그녀는 어찌 그리 예쁘고 행복해 보이던지.
깜깜한 터널이 지나면 반드시 밝은 햇빛이 기다리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역경의 고통도 사랑해야 한다. 참된 행복은 그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이 친구의 사랑과 결부되어 음악이 더 친숙하게 들린다. 친구와 함께 행복했던 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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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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