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오랫만에 집에서 쉬면서 영화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상담 공부 이후엔 등장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한켜 한켜 들추며 인간 내면의 깊은 욕망과 무의식의 세계를 엿보는 여행이 흥미로워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곤 한다. 오늘은 뭘 볼까 찾던 중 빨간 사립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는 로빈 윌리엄스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눈길이 멈추었다.
수많은 영화 속 명대사로 우리에게 웃음과 위로와 감동을 주었던 그가 떠난지 2년이 넘지만 평소에 약물과 알코올 중독과 조울증으로 인한 심한 우울증을 겪다가 결국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그가 심리상담사인 나의 가슴에 오랫동안 안타까움과 아픔으로 남아있다.
“카르페 디엠(현재를 살아라).”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으렴. ‘난 독특하다’는 것을 믿는 거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어. 나만의 걸음으로 나의 길을 가는 거야.” 키딩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들려주던 명대사들은 우울증과 자괴감에 빠진 청소년 내담자들에게 필자가 들려주는 격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 <굿윌헌팅>에서 내담자에게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말해주던 심리상담사 숀의 대사 역시 죄책감으로 자신을 미워하고 학대하는 내담자가 자신을 용서하도록 돕는 큰 힐링의 메시지다. 어찌보면 그의 대사들은 중독과 조울증으로 시달리던 그가 스스로에게 건네던 간절한 치유의 메시지였는지 모른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여러 배역을 통해 다양한 역할을 입고 살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애도사처럼 그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패치 아담스 의사였고 알라딘의 지니였으며, 200년을 살고 죽음을 선택한 로봇이였고, 대통령이면서 피터팬 일 수 있는 사람이였다. ‘영화 촬영을 마치고 그 역할들을 벗은 후 현실로 돌아와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가 문득 궁금하다. 대부분의 그의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났었다. 그렇다면 혹시 영화처럼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는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감, 그리고 그 사이에 갖힌 무기력한 자신을 대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알콜과 약물에 의존하다 깊은 우울의 늪에 빠져버린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역할의 옷을 입고 산다. 어찌보면 산다는 것은 무대에 오른 배우가 배역에 따라 옷을 잘 갈아입는 일이 아닐까? 때론 엄마나 아빠이면서 아내나 남편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부모님의 아들이나 딸이기도 해야한다. 직장에서는 상사이면서 부하이기도 하며, 선생이면서 학생일 때도 있다. 합당한 장소와 때에 합당한 역할을 입는 것은 참 중요하다.
때론 직장 상사나 선생의 역할의 옷을 갈아입지 않고 집에서도 배우자나 자녀의 잘못을 계속 지적하고 고치려고 한다. 어떤 이는 군대식의 명령체계로 가정을 이끌려하다가 가족간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한다. ‘사랑과 포용’ 위에 세워진 가정공동체는 옳고 그름과 손해득실의 사회의 원리가 적용되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에서의 역할을 벗고 가정에서는 거기에 맞는 역할의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한다.
상담 중에 직장에서의 역할이나 직업이 자기 자신인 줄 알고 사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오랫동안 역할이나 직업이 나 인줄 알고 살아온 이들에게는 역할이 없는 자신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모든 역할을 내려놓고 그냥 나로 사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 역할이나 책임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거나 조용히 산책을 하거나 밭을 가꾸거나 뜨게질을 하는 등,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 몰입하면서 그냥 ‘내가 나’이어도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이다.
봄이 성큼 다가온 워싱턴의 3월. 올 봄에는 한두개의 역할만으로도 행복해서 신나게 동네를 뛰놀던 그 때처럼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몰입하는 나만의 행복한 쉼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counseling@fccgw.org
<
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