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오고 있다. 아직은 앙상한 나무가지에 사뿐하게 걸터앉은 봄은 가지끝을 살살 문지러 본다. 연초록 기운이 가지 끝에 환상처럼 맴돈다.
새벽부터 맑은 공기를 흠뻑 머금은 새들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청량한 목소리로 번갈아가며 노래하고 있다. 정신이 맑아진다. 비발디의 ‘사계’중 ‘봄’을 좋아하는 이유다.
전원에는 가벼운 바람이 일고 있고 양과 목동은 한가하게 거니는데 어느새 얼음을 깨고 계곡을 흐르는 물의 생생한 생명력과 산새의 지저귐이 배경 리듬이 되어 용솟음치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기쁨과 희열이 샘솟는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희망찬 삶의 샘물이 가슴 속을 흐르고 행복감이 젖어온다.
긴 겨울이었다. 작년 가을 어느 날, 아들이 전해 준 아기 소식에, 나는 임신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 사람처럼 조바심이 났었다. 가끔씩 아들과 만날 때면 며느리의 배만 곁눈질 했었는데, 이젠 커다란 수박이 얹혀 있는 것처럼 무거워 보여서 안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조물주는 그의 계획아래 모든 걸 준비해 놓고 인간에게 열 달이란 인내의 은혜를 주신 것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아기를 볼 수 있다. 새 생명은 얼마나 축복인가.
기다림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인생이 여러모로 닮았다. 젊어서는 바쁘게 생활하면서 기다림을 모르고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과 인생을 낭비한다는 것이 통하는 걸 알게 됐다. 가끔 나는, 컴퓨터보다는 두꺼운 엘범을 펼치고 애들 어렸을 때 찍었던 사진보기를 즐겨 한다. 그 곳에는 시간과 인생이 함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이제는 화석으로 굳어버린 시간들이 인생의 한 구석을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앨범속의 시간은 사랑을 이끌고 지키면서 머무르게 하는 내면의 움직임이 인생을 꼭 닮았다.
둥지에서 오랜 시간 알을 품고 있는 새들, 새끼를 배고 몇날며칠을 뒤뚱대는 동물들, 여름내내 태양을 품고 열매를 맺는 식물들…자연은 기다림 속에서 자손을 이어가고 인간은 희로애락의 긴 기다림 속에서 성숙한 인생을 배우게 되는 그 기다림의 의미를 이제야 터득하고 있다.
기다림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으리란 희망을 갖게 해준다. 긴 가뭄이 지난 후의 단비가, 긴 장마 끝의 한 줄기 햇빛이, 길고도 힘든 산고 후에 태어나는 아기가… 모두가 기다림을 통해 삶의 기쁨과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해와 달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이룰 수 없음을 알기에 더욱 기다림의 축복에 감사하게 된다.
완벽하신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봄은 오고 있다. 살면서 설사 환난과 고통이 닥치더라도 지긋하게 참고 기다리며 견디어내면 그것을 통해 인생의 참 기쁨, 보람, 진정한 그분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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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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