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만연한 사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처’란 단어가 진짜 ‘상처’보다 더 넘쳐나는 듯 하다. 칠순이 넘은 한 지인이 “요즘은 왜 그렇게 상처란 말을 많이 쓰는지 모르겠네. 언짢은 말을 들어도 ‘상처받았다’ 하고 가족과 좀 언쟁해도 ‘상처 받았다’ 하고… 우리 자랄 때는 몸에 진짜 생채기가 나면 그걸 상처로 알았는데… 요즘 세대는 왜 그리 상처를 잘 받는지…”라고 말하는데 꽤 공감이 간다.
혹자는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지고 험해졌잖아. 생존경쟁이 심해져서 상처를 더 잘 받는 게 아닐까’라고 한다. 물론 부모나 배우자의 신체적, 정신적 학대, 또는 성폭행이나 사회의 차별과 편견 등으로 마음에 씻기 힘든 ‘진짜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 있다. 특히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가 오랜 시간 깊은 상처로 남아 상담을 받으며 치유해 가는 이들도 있다.
상담대학원에 다닐 때 자신의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 공부 후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의 삶을 사는 동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잘 치유된 상처는 오히려 다른 이들의 아픔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귀한 재산임을 일을 할 수록 더 느껴 감사하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많은 내담자들은 환경이나 남에게 받은 상처보다 스스로 기대했다가 그 기대가 깨질 때 오는 상처로 더 힘들고 아파하는 것을 본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나 ‘받고 싶었던 대우와 인정’ 또는 ‘기대했던 자녀나 배우자의 모습’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가 내게 상처를 주었다’ 말한다. 그러나 우리 한 번 솔직해지자. 진짜 상처의 주범은 ‘내 기대를 채우지 못한 그 사람’인가, 아니면 ‘기대를 쌓아올린 나’인가?
상처의 주범을 찾는 것은 참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을 바꿀 힘이 없고 자신을 바꿀 힘만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그 사람들을 하나 하나 찾아다니며 나에게 상처를 안 주게 할 수는 없지만, 상처의 주범이 내 안에 있다면 어떻게 상처를 덜 받을지 애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 상담이나 가족 상담을 하다보면 가족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들을 만난다. “나를 희생하며 자녀에게 모든 정성과 힘을 쏟으면 공부 잘 하고 성공하겠죠”라고 조건부적 사랑을 기대하는 부모. ‘날 사랑하면…’이란 사랑의 족쇄로 상대가 나를 위해 완전하고, 빈틈없이, 그리고 계속적으로 자신의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아내와 남편. 모임에서 혹은 자녀에게 기대하던 대접을 받지 못할 때 “어떻게 감히 나한테…”라며 상처받는 사람들.
그렇다면 상처의 주범인 그 기대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세상이 너무 가까와졌고, 그와 비례해 우리의 기대도 함께 높아진 탓이 아닐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만난 다른 이들의 삶은 나와 남을 계속 비교하게 만든다. 누가 생일에 무슨 선물을 받았는지, 휴가 중에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갔는지, 또는 아이가 어느 학교에 합격했는지 등이 내 안에 어느새 기대를 심는다.
또한 드라마와 영화의 주인공들 또한 우리가 비현실적인 기대를 세우는데 일조한다. 매너 좋고 돈도 잘 벌고 거기에 잘 생기기까지 한 남자 주인공. 살림 잘 하고 자녀 교육에 천부적이며 경제적 능력까지 갖춘 미모의 여주인공. 놀면서도 공부 잘 하는 엄친아. 그들로 인해 내 안에 만들어진 ‘자녀와 배우자의 이상형’이 혹시 나의 가족들에게 투사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저는 남보다 더 쉽게 마음의 상처를 받아요’라고 느낀다면 오늘은 ‘나의 상처 리스트’를 한 번 작성해보자. 나의 상처의 주범이 혹시 좌절된 나의 기대 때문은 아닌지 점검해 보길 바란다.
counseling@fccg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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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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