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미국으로 온 1970년 초기만 해도 미국인들이 아주 친절했단다. 길을 가다가 모자를 쓴 신사들과 마주치면 그들 중에는 심지어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길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잘 안하는 요즘에는 어림도 없는 광경일 것이다.
얼마전 한국에서 온 친구 부부에게 뉴욕을 구경시켜 주던 중 일어난 일이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친구 부인이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고싶어 했다. 지하철 표를 사려고 매표 기계에 가니 10불 이상 되는 지폐는 사용할 수가 없어, 기계 앞에서 손에 20불짜리 지폐를 들고 잔돈때문에 도움을 청하는데 그 많은 사람중에 단 한 명도 관심을 안 보이고 그냥 지나친다. 할 수 없이 지하도 밖에 나가 잔돈으로 바꾸려는데, 마침 입구 근처에 손수레 땅콩 행상이 있었다. 사정을 이야기 하니 장사가 안돼 바꾸어 줄 돈이 없단다. 열이 슬슬 오르는 것을 참고, 길 건너 한 상점에 들어가 또 시도하는데 물건을 사야만 계산기의 서랍을 열어 돈을 꺼낼 수 있기에 안되다고 한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먼저 그 땅콩 행상에게 가서 잔돈때문에 땅콩을 사니, 웬 걸 잔돈이 손에 넉넉히 쥐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참 기가 막혔다.
이 에피소드 후에 목적지인 미술관에 도착하여 입장하려는데 입장을 저지한다. 이유는 친구가 미술관을 마지막으로 뉴욕 구경을 마치고, 비행기 타고 아들에게로 가려고 가지고 온 여행가방 때문이었다. 여러가지를 제안하고 사정 사정 했지만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백팩(Back Pack)을 멘 사람들은 금속 탐지기만 통과하면 입장이 허락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너무 모순이라고 항의하다가, 그래도 안되어 메니저를 불러달라고 하여 그에게 논리적으로 항의하니, 대답은 역시 규정이 그렇게 되었으니 무조건 안된다는 것이다. 본인도 공무원의 오랜 경력으로 예외가 없는 규정은 없고, 또 규정도 필요에 따라 자주 바뀌는 것을 알기에, 나중에 장문의 항의 이메일을 미술관에 보냈는데, 의논하고 대답해 준다더니 감감 무소식이다. 예상한 일이었지만….
분기탱천하여 할 수 없이 돌아서는데, 마침 간단한 샌드위치를 파는 손수레 행상이 바로 옆에 있기에, 사정을 호소하고 잠깐 가방을 맡아 줄 수 있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한다. 보관료는 얼마나 주면 되냐고 하니, 그런건 필요 없단다. 고맙고 미안해 몇가지 스낵을 산 후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가방을 찾으려 하니 돈을 내란다. 아까는 보관료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니, 자기는 그렇게 말 한 적이 없고, 한다는 소리가 “Nothing is free in the New York(뉴욕에는 공짜가 없다)”라고 큰소리를 낸다. 참 기가 막힐 일이나, 가방을 찾아야 하겠기에 할 수 없이 요구하는 돈을 지불했다. 돈이야 얼마 안되지만, 미국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생각하니 가슴이 참 씁쓸했다.
이렇게 미국이 불친절하고 삭막해진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많이 나빠진 경제, 9.11 사건 후에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사건으로 인한 불안감, 심화되어가는 듯한 흑백분규, 홍수처럼 밀려들어 온 이민자들, 불법체류자들, 또한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간끼리 서로 신체적 접촉이 줄어들고, 인터넷으로 주로 소통하는 고립된 삶의 형태 등 여러가지가 머리를 스친다. 더구나 트럼프는 어려운 이웃 나라를 도와주던 미국의 전통에 역행하며 “America First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니, 아마도 이 미국사회는 점점 더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삭막해 질 것 같아 가슴이 무겁다.
<박찬효 전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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